대량복제 시대에 예술의 고유한 분위기인 '진정성'은 지켜질 것인가. 인류는 마주치는 모든 것을 복제해 왔다.(Homo replicus) 산업혁명은 대량생산 기술로 크게 부를 늘렸고, 대량 복제 산물을 분배해서 사회 갈등을 해소했다. 산업혁명이 사물의 대량 복제라면 디지털 혁명은 인간 정신활동 산물의 대량 복제다. 디지털의 복제 능력은 압도적으로 빠르고 정확하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우리 인간의 정신 활동뿐만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환경마저 복제하려 한다. 가상공간에 한 번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 모든 곳에 동시 존재한다. 가상공간은 궁극의 '무한복제 공간'이다.
발터 베냐민은 사진과 영화의 기계적 재생산 기술이 예술품의 고유한 분위기인 '진정성'을 파괴함을 우려했다. 창작의 최초 상황에서 빛났던 예술품의 이 유일무이한 가치는 복제 기술로 여러 상황에서 현재화되며 그 빛을 잃었다. 베냐민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품에서처럼 현실마저도 그 진정성을 도둑맞을 수 있을까?” 금강산 일만이천봉이 메타버스에 완벽히 형상화되고 대량 복제된다면 우리의 애틋한 그리움도 함께 훔쳐 가는가?
가상세계의 공격은 이미 시작됐다. 사진 발명은 예술 대중화로 이어져서 소수의 전유물이던 예술의 성격 전체를 바꿨다. 창조 못지않게 예술이 전달되고 수용되는 과정들이 중요해졌다. 복제 기술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진화시켰고, 예술은 미완의 커뮤니케이션이 되었다. 상류층 출신이지만 자본주의를 혐오했고, 유물론을 추종했지만 공산당과 거리를 두었던 베냐민은 개개인의 지극히 사적인 존재 양식들을 사랑했다. 프롤레타리아는 공식적으로 사적인 삶을 추방했고, 부르주아는 비공식적인 방법으로 인간적인 것들을 획일화했다. 사적 시공간이 박탈된 삶에 인간적 진정성이 발 디딜 틈은 없었다. 우리 모두의 삶은 그 자체로 고유한 미완의 예술품이다.
대체불가토큰(NFT)은 무한 복제의 가상공간에서 최소한의 사적 시공간을 확보해 보려는 몸부림이다. 가상자산으로 분류되지 않는 NFT는 단지 위변조가 방지된 고유번호를 새겨 넣은 블록체인 토큰을 예술품 등에 엉성하게 연결하는 방식으로 진정성을 부여하려 하지만 연결된 디지털 예술품의 대량 복제는 여전히 가능, 진정성은 부여되기 어렵다. 실제로는 차별화의 위협과 욕망, 부화뇌동, 취향과 견해의 평준화, 상호견제와 같은 비공식적인 기제만 동작할 뿐이다. 하지만 사진 발명으로 예술의 성격 전체가 바뀌었음을 기억하라. 영화는 복제 기계의 집중적 침투를 통해 현실의 모습을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재현하며 영향력이 가장 큰 문화산업으로 진화했다. 예술품의 복제 가능성은 예술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복제 기술은 예술품의 진정성과 고유한 분위기를 손상했지만 예술 대중화를 통해 예술품의 해석과 향유에 대한 우리 행동을 진화시키고, 예술의 민주화를 선물했다.
NFT는 프롤레타리아식 감시와 부르주아식 역감시 세상을 넘어 '모두에 의한 모두의 상호감시'인 팬지놉티콘(Pansynopticon)으로 투명하기 짝이 없는 블록체인 위에서 예술과 삶의 사적 시공간 확보가 가능할까? 아직은 전체주의적 폐쇄명령과 자본주의적 욕망만 들끓는다. 난립하는 '프로필 사진'으론 어림도 없다. 크립토펑크처럼 이미 전설이 되었을 때야 가능하다. 새 NFT 프로젝트들은 사적 시공간인 커뮤니티의 운영진 및 NFT 소유자들의 고유한 삶의 자취와 공동체 운영규칙의 실현 여부에 따라 판가름날 것이다. 공동체의 신화와 전설에서 개인의 고유한 삶으로 예술의 성격 전체를 바꾼 영화처럼 삶을 격하게 침투해 오는 복제 기계와 부대끼면서 우리의 생각·마음과 함께 진화해 가는 NFT의 진정성은 가능한가? 게임에는 많은 참여자가 상호 작용하지만 아직 현실세계와의 연결은커녕 고립무원의 게임 세계에 갇혔다. 이제 디지털 기술은 예술을 넘어 현실세계 개인의 삶을 향해 진군한다. 공동체적 체험인 예술과 오락에선 무명성 뒤에 숨어 안전했지만 내밀한 개인화로 가는 길에는 프라이버시라는 가시덤불이 기다리고 있다. 사적 시공간 확보를 위해 발명된 암호화 기술로 만든 블록체인이 '모두에 의한 모두의 상호감시'라는 점은 우리의 삶만큼이나 아이러니하다. 온라인에서 쇼핑하고, 웨어러블로 운동하고, 먹고 마시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대화하고 고뇌하는 삶의 진정한 모습들의 디지털화는 그 산업적 가치가 막대한 만큼 진정으로 살점이 뜯기는 가시덤불을 헤치며 가야 하는 일이다.
![[김주한 교수의 정보의료와 디지털 사피엔스]예술의 진정성과 대체불가토큰](https://img.etnews.com/photonews/2202/1505789_20220224144750_876_0001.jpg)
김주한 서울대 의대 교수 juhan@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