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한 해 되세요.” 새해가 되면 우리가 흔히 듣게 되는 인사인데, 사실 이는 틀린 말이다. 건강하라는 대상이 한 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를 바르게 표현하려면 “건강하게 한해 보내세요”라고 고쳐야 한다. 이처럼 우리는 주어와 술어를 맞추지 못하거나, 단어를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등의 실수를 자주 하곤 한다. 전문용어에서도 우리가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표준연이죠. 표면오염감시기 검교정 가능한가요?”
필자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위와 같은 외부 문의 전화를 몇 차례 받았다. 검교정이 검정과 교정을 의미한다는 것과 교정의 의미는 알겠는데, 도대체 검정은 무엇이고 왜 검교정을 함께 문의하는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연구원 선배들에게 문의해도 “우리 연구원은 교정업무만 담당하고 검정은 법정계량기에 대한 것이야”라는 대답만 듣게 되니 더욱더 혼란에 빠졌다. 왜 대상 기기에 따라 교정과 검정으로 나뉘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 후로 정확한 의미와 차이점을 알고 이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나라 법정계량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는 '검정(檢定)'이란 용어는 사실 측정학용어집에서 말하는 '검증(檢證·verification)' 의미이다. 무슨 이유로 검증 대신에 '검정'이란 용어로 채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 오역이다. 검증은 어떤 것에 대해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해서 증명하는 행위다. 검증의 결과로서 성적서가 발급되고, 그 성적서에는 입증 여부를 합격·불합격으로 표시된다. 가령 법정계량기는 주기적으로 검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검증하는 검증기관에서 해당 법정계량기의 출력값이 어떤 미리 정해진 범위 내에 있으면 합격 검증성적서를 발부하게 된다.
이와는 다르게 교정성적서에는 합격·불합격이 아닌 교정결과, 즉 교정값이나 교정인자가 표시된다. 이처럼 교정과 검증의 차이는 분명히 구분할 수 있다. 또한, 검사(檢査·inspection)는 일종의 검증으로 합격·불합격 판단의 근거를 주로 시험성적서에 의존하는 행위이다. 검사기관은 시험기관과는 별개이지만 검증기관은 검증성적서를 발부할 뿐 아니라 이를 위한 측정도 함께 수행한다.
그러면 검정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측정학적으로 검정은 가설검정(hypothesis test)이나 검정통계량(test statistic)에서와 같이 테스트(test)에 해당하는 용어다. 교정과 시험에서의 시험(testing)과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검정에는 증명이나 입증 같은 검증의 의미가 전혀 없고 그냥 심사하는 행위이다. 그러니 검증 의미에 검정이란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
이외에도 용어 정의 오류로 혼란을 일으키는 실례는 여럿 있다. 표준물질(reference material), 기준기(reference standard)와 미터법(metric system)이 그 중 일부다.
비단 측정학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분야에서 정확하고 정밀하게 용어를 정의하고 해당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이 공통적인 의미를 공유하게 하는 것이 그 분야 발전에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이다. 처음에 잘못 굳어진 용어의 개념은 바꾸기 매우 어려우므로 새로운 용어를 채택할 때에는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가 잘 이루어졌다면 이렇게 전화를 받았을 것이다.
“표준연이죠. 표면오염감시기 검증이나 교정 가능한가요?”
이경범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방사선표준그룹 책임연구원 lee@kriss.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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