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

[ET시론]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여 만에 수도 키예프까지 진격했다. 그에 맞서 우크라이나는 국가 총동원령을 내려서 민간인과 기간 시설을 전시 체제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외신은 키예프 곳곳에서 폭발음과 총성이 울리고, 우크라이나군이 격렬하게 러시아군에 저항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우리가 현지 사진과 영상을 통해 보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은 여러모로 처절하다. 우크라이나 영내로 진격하는 러시아 전차와 기갑차량에 맞서서 결혼식을 서둘러 올리고 동반 입대하는 젊은 부부, 두 팔을 벌린 채 맨몸으로 막아 나서는 우크라이나 남성, 중무장한 러시아 군인 바로 앞에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호통치는 할머니, 전선으로 떠나는 아빠를 울며 포옹하는 어린 딸, 방탄조끼와 헬멧을 쓰고 초췌한 얼굴로 결연하게 저항하는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70여 년 전 우리 모습이 겹쳐 보인다. 도대체 우크라이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약 8년 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빼앗긴 직후부터 가까운 시일 내에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노린다는 외신 보도가 줄을 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에도 우크라이나 위정자는 '평화 호소'에만 기댔을 뿐 침략에 대비한 현실적인 방비책을 세우지 않았다. 러시아 공습을 피해 지하철역으로 들어간 키예프 시민들은 미군과 나토군은 우릴 구하러 언제 오느냐며 절규하고 있다. 정말 우크라이나 국민은 제대로 된 상호방위조약도 없이 미국이나 나토 국가가 우크라이나 방위를 위해 자국 청년이 피를 흘릴 것으로 믿었단 말인가?

대선 기간에 터진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전쟁의 교훈은 의지할 동맹도 없으면서 자신의 힘도 기르지 않은 채 평화만 호소하는 국가, 명백한 외교 원칙이 없는 국가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현 정부는 5년 내내 “김정은에게는 비핵화 의지가 분명 있다”면서 나날이 증강되는 북한의 핵 위협과 미사일 도발에는 마치 동면 상태에 있는 개구리처럼 입과 눈을 감은 채 외면했다. 북한이 극초음속 미사일, 열차 차량 발사 미사일, 순항미사일 등 개량된 무기를 계속 선보임에도 그나마 북한이 핵실험 또는 ICBM 발사를 하지 않는 것이 다행 아니냐며 부분적 제재 완화만을 다른 국가에 설득하다가 냉대만 받았다. '종전 선언'이 북한 비핵화의 입구라며 도쿄올림픽, 베이징올림픽 등 주변 국가들의 스포츠 축제마저 한반도 종전선언 채택으로 이용하려다 김정은의 무시에 대한민국 체면을 구겼다. 북한과 중국 군사동맹 성격이 핵보유국 동맹으로 변해 가고 있음에도 '안미경중' '균형외교'라는 외교정책을 내놓으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이름뿐만인 훈련으로 퇴색시켰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야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동맹국 모두 신속한 대러시아 제재를 발표했으나 현 정부는 24일에서야 '러시아가 전면전을 감행할 경우 제재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다가 마지 못해 제재에 참여하는 인상을 주었다. 대선 동안 언급된 외교정책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탈이념 탈가치'에 기초한 외교정책을 발표하더니 다음에는 한미동맹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편파적인 판정과 이해할 수 없는 대회 운영으로 국민의 공분이 중국을 향하자 갑자기 서해에서 중국 어선이 불법 조업을 지속하면 어선을 격침하겠다는 강경 발언도 있었다. 오랜 외교관 생활을 통해 얻는 내 경험에 비추면 원칙 없는 즉흥 외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하고 국익과 국가를 수호할 차기 정부의 외교 정책관은 예측할 수 있고, 가치·이념에 기반하며 동맹을 우선해야 한다. 빠른 속도로 소원해지는 한미동맹을 재건하기 위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도 우선시되어야 한다. 한미동맹에 기초한 우리 외교 전략 목표를 명백히 천명해서 다른 국가가 오판치 않도록 말이다. 새 정부의 안보 정책관은 확고한 국방력과 억지력에 기반한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을 목표해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로 우리를 공격하려는 징후가 명백하면 선제타격으로 대한민국 국민과 국토를 보전하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밝히고, 북한의 공중 핵무기 폭파 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현실에 맞게 사드를 추가 배치해서라도 수도권 주민의 생명 안전을 지켜야 한다.

일각에서는 필자의 안보 정책관이 '전쟁 위험을 고조시키는 위험한 행위'라고 비판한다. 비판은 대한민국의 3축 체계에 기초한 선제타격 전략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의 소치로 보인다. 우리의 선제타격 개념은 전쟁 개시 수단이 아니라 전쟁이 임박 또는 진행 과정에서 불가피한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선제'라는 표현은 우리가 먼저 북한을 공격해서 평화를 깨는 개념이 아니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고 우리도 선제타격을 결심할 정도의 상태이면 이미 평화는 깨진 상태이다. 평화와 전쟁 경계선이 어디에 있고, 그 과정에서 선제타격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해서도 '전쟁은 이기더라도 공멸, 평화가 경제이고 밥' '대화로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는 '우크라이나 초보 정치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나온다. 우크라이나와 국제 언론은 이 발언을 비판하고 있다. 엄청난 외교 결례이다. 원칙 없는 외교 정책과 확고한 방어 능력을 방기해 나라를 잃을 위험에 처한 우크라이나를 보며 이번 대선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인물의 외교·안보관에 주목해야 한다. 제20대 대선은 우리에게 북핵 위협 앞에서도 김정은 정권에 평화를 호소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는 대통령이 필요한지, 동맹을 강화하고 자기 힘을 길러서 평화를 지키려는 대통령이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선거다.

[ET시론]우크라이나 전쟁이 주는 교훈

태영호 의원은...

평남 평양 출신으로, 21대 국회 서울 강남구갑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다. 전 북한 외교관으로, 우리나라에 귀순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중국 베이징외대 영문과 출신이며, 덴마크·스웨덴·벨기에 등 유럽 지역을 중심으로 외교 업무를 수행했다. 2016년 탈북 이전에는 주영 북한 공사로 활동하며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서열 2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귀순 이후에는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 문재인 정부 통일부 국제안보행정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2020년 자유한국당에 입당하면서 정치 행보와 함께 국회의원 도전 의지를 밝혔다. 21대 총선 당시 선거운동 기간에는 경호 목적으로 사용한 주민등록상 가명인 '태구민'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금은 '태영호' 본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국회에서는 외교안보특별위원회 소속으로, 주영 북한 공사로 있으면서 축적해 온 전문성을 살리고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 onekorea20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