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현 교수의 글로벌 미디어 이해하기]〈53〉빈지워칭도 혁신 대상?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혁신이라 함은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죽을 벗기는 아픔으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디어 산업에서 혁신을 통해 우리 삶을 바꾼 두 회사를 꼽는다면 애플과 넷플릭스일 것이다.

애플은 아이폰과 앱이라는 개념을 통해 지난 15년 동안 우리 삶을 바꿔 놓았다. 이제 앱이 없는 삶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아주 쉽고 편하게 인터넷에 접속해서 검색하고 구매하고 주문하는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스마트폰과 앱에 의존하고 있다. 이것이 혁신이다.

넷플릭스는 어떠한가. 넷플릭스가 미디어 산업에 던진 혁신의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우리 소비자에게 혁신적으로 다가온 것은 아마도 소위 몰아보기 빈지워칭(binge watching)이 아닐까 한다. 몰아보기에 대해 '책을 밤새워 읽듯 몰아보기도 이제는 일상이 된다'고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선언했다.

역사를 BC와 AD로 나눈 것처럼 시청자의 시청 행태를 넷플릭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고 하면 너무 과장한 것인가. 넷플릭스 이전에는 소위 채널을 통한 라이브 방송이나 한 편씩 시청했던 소위 주문형비디오(VOD)밖에 없었다. 넷플릭스가 몰아보기 시청을 제공하면서 이용자 시청 행태가 변한 것이다. 좋아하는 시리즈물을 매주 기다려서 시청하는 것이 아니라 시리즈 전편을 원하는 시간에 한 번에 몰아서 시청하게 된 것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다.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훌루와 아마존까지도 몰아보기 서비스를 따라했다. 2019년 말 애플TV플러스와 디즈니플러스가 OTT를 출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넷플릭스 혁신 서비스가 OTT에서는 사실상 표준이 돼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청자 입장에서 원하는 콘텐츠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편이성과 유용성 때문에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가입과 해지가 자유로운 OTT 특성상 이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를 몰아본 다음에는 언제든지 쉽게 해지할 수 있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가입자를 지속 유지하기 위해 지속 오리지널 시리즈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도 증가하고 있다.

더욱이 시리즈 전편을 제작 완료해야 하는 어려움도 가중된다. 초창기 OTT 선택폭이 그리 넓지 않았을 때는 가입자 전환 등은 그리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았다. 오히려 OTT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한 서비스가 몰아보기였다.

2019년 11월 이후 출시된 애플TV플러스, 디즈니플러스, 피콕, HBO맥스, 디스커버리플러스, 파라마운트플러스 등 6개 OTT는 몰아보기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 부족과 서비스 초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워진 제작 환경 탓에 이를 취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들어선 초기 몰아보기를 제공했던 훌루가 코미디 오리지널 시리즈를 하이브리드 모델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시리즈 처음 3회까지는 한 번에 제공하지만 다음 회부터는 매주 한 편 제공하는 식이다. 아마존도 몰아보기 전략에서 후퇴해 올여름에는 훌루 하이브리드 모델을 따라갈 예정이다.

넷플릭스도 몰아보기를 재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전면적 전략 수정은 아니지만 올해 20조원 가까이 콘텐츠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경쟁 심화로 타 서비스로의 가입자 이탈이 자유로운 까닭에 몰아보기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지난달 지상파 방송 출신 스케줄링 전략 담당 임원을 채용했다는 것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시청자 시청 행태 근본적 변화를 일으켰던 혁신 아이콘인 몰아보기가 경쟁 심화와 코로나19로 인한 제작 환경 변화 등으로 이제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 듯하다. 한때는 혁신이었지만 시간과 환경 변화에 따라, 그것도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디지털과 인터넷 세상에서는 한순간도 그 자리에 멈출 수 없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국내 미디어업계 혁신 방향과 속도를 되짚어 보게 하는 변화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