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로이트는 최근 전 세계 21개국 2000여명의 C레벨 임원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기반으로 '2022 CxO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공개했다. 모든 산업 분야에 걸쳐 기업들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인식과 추진 현황을 상세히 파악함으로써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 움직임이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현상임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보고서에서 주목할 것은 기업 97%가 기후 위기로 인해 사업 운영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다양한 대내외 이해관계자로부터 즉각적인 기후행동에 대한 상당한 압박이 있다고 응답하면서도 실제 대응 수준에서는 기업 간 상당한 격차를 보였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선도 기업의 경우 후행 기업 대비 2030년 이전 탄소중립(Net-Zero) 달성 목표 수립 비율이 82%로 32%p 높았던 것은 물론 추진 활동 건수는 평균 11건으로 2배 이상 높았으며, 활동 유형에서도 의미 있는 저탄소 전환을 끌어낼 수 있는 조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가 진단한 '2021년 국내 ESG 경영 동향 분석' 결과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잘 드러난다. 최근 1~2년 ESG 경영 도입 확산으로 전 산업 부문에서 ESG 관련 활동이 추진되고 있는 가운데 개별 기업별 현황 이면을 파고들어가 보니 다소 판이한 모습을 보였다. 일반적으로 ESG 경영에 대한 당위성과 필요성이 높을수록, 충분한 자금 여력과 인력을 확보한 기업일수록 활발한 경향을 띠었지만 이것이 모든 업계와 기업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전체 19개 산업군별 추진 실적을 기준으로 기후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높거나 친환경 소비자 행동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금융(전체 비중의 25.6%), 석유화학(9.0%), 유통·물류(8.3%), 건설·기계(7.5%), ICT(7.3%), 소비재(6.6%) 산업 등이 상위 7대 선도 업종으로 꼽힌 반면에 반도체·디스플레이(1.7%), 자동차(1.4%), 발전·에너지(1.3%)와 같이 비슷한 당위성을 띠는 온실가스 다(多)배출 산업 중에도 추진 실적이 낮은 업종이 일부 존재한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활동 유형 측면에서도 ESG 경영 자체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 목적에서 기인한 부분이 큰 이유로 대부분 환경 부문에 치우친 면이 있기는 하지만 선도 업종에 속하는 기업일수록 보다 폭넓은 활동 범위를 나타냈다. 다만 전체적으로 ESG 요소에 기반한 신사업 창출과 사업 포트폴리오의 전환을 다루는 '사업 혁신'(전체 비중의 20.0%)을 가장 집중적으로 추진하면서도 과거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 차원에서 접근하던 관행에 따라 '기업사회적책임(CSR) 활동'(16.6%)에 대한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 보다 강한 의지와 노력이 요구되는 'ESG 목표 설정'(3.8%), '외부 공시'(3.6%) 등 활동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 등은 ESG 경영체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발견되는 과도기적 특징으로 관찰됐다.
두 가지 조사·분석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동일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과 행동은 별개라는 것,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기후행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탄소중립 시대로 나아가는 여정에 결코 배제되는 기업이란 없다. 저탄소 전환에 따르는 불확실성 속에도 과감한 행동으로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기업이 있다는 것과 이들의 활동 성과가 이미 선도 기업과 후행 기업을 가르기 시작했다는 분명한 사실이 국내 기업에 부디 날카로운 경종이 되기를 바란다.
백인규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장 inbaek@deloit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