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역사상 무예가 가장 뛰어난 사람은 누구일까. 정사(正史) 고려사를 보자. 공부엔 소질이 없었다. 말단 향리의 아들인 그는 1100년경 제1차 여진전쟁에 종군했다. 고려군이 정주성에 갇혀 전멸 위기에 놓이자 총사령관 임간에게 말 한 필과 무기를 요구했다. 어처구니없어 하던 임간도 별 수 없어 그의 말을 들어주었다. 그는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장 2명을 죽이고 아군 포로 2명을 구해 왔다. 추격해 오던 적장 2명까지 죽였다. 그의 활약으로 고려는 승리한다. 제2차 여진전쟁에선 총사령관 윤관의 명으로 여진족이 완강히 지키고 있는 석성에 갑옷차림으로 방패만 들고 올라 적장 여러 명을 죽였다. 기선을 잡은 고려군은 석성을 함락시켰다. 영주성 싸움에선 윤관이 1000명의 여진족에 포위되자 결사대 10명을 끌고 들어가 구출했다. 그의 동생이 자살행위라고 말리자 “나는 죽어 나라를 지키겠다. 너는 살아 부모를 모셔라”고 했다. 공험진에선 장군 왕자지(王字之)가 기습당하자 즉시 들어가 구해냈다. 장군 최홍정이 지키는 웅주성이 포위되자 단신으로 포위망을 뚫고 나가 구원군을 끌고 왔다. 함주와 영주에선 여진족 기동대를 물리쳤다. 여진족은 중국으로 남하해 큰 나라가 되었지만 고려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여진족 사령부의 지침은 그가 살아있는 한 고려와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후 고려는 이자겸이 권력을 쥔다. 그는 이자겸을 도와 왕 인종을 공격했다. 이자겸이 다시 왕을 제거하려고 군사를 일으킬 때 왕은 그에게 편지를 보냈다. “나의 장인이자 그대의 사돈이 나를 죽이려 한다. 그대는 어찌 하겠는가.” 그는 그길로 왕궁으로 갔다. “폐하, 소신이 왔나이다.” 이 말 한마디에 이자겸의 군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신하로서는 최고 자리에 올랐다가 이자겸을 도운 전력이 문제되어 귀양갔다. 인종의 배려로 고향에 옮겨졌지만 병사했다. 관우, 장비도 명함을 못내밀 고려 장군 척준경의 이야기다.
기업의 생로병사도 사람의 삶과 다르지 않다. 벤처, 스타트업부터 시작한다. 자신의 대표적인 브랜드 상품이 있어야 한다. 척준경의 무예 같은 것이다. 그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해야 한다. 기회가 왔을 때 재빨리 움직여서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척준경은 최말단 하사관이었지만 겁도 없이 총사령관에게 말과 무기를 요구했고, 그 제안은 받아들여졌다. 기업도 자신의 아이템이 먹힐 수요와 시장을 찾아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매출을 내야 한다. 정부 규제와도 싸워야 한다. 우호적인 인적 네트워크를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 총사령관 임간은 척준경의 공을 높이 평가해서 승진시켰다. 윤관은 척준경이 자신을 구했을 때 울먹이며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라고 했다. 대의를 지켜야 한다. 대한민국 기업으로서 고객과 제휴업체를 호구로 알면 안 된다. 먹튀도 안 된다. 고객을 오랫동안 진심으로 만족시킬 서비스를 하라. 안타깝게도 척준경은 작은 의리를 알았지 큰 의리를 몰랐다. 이자겸 같은 권력자를 위해 일했다. 기업은 그래선 안 된다. 규제를 풀겠다고 권력에 붙지 마라. 정치가 경제에 관심을 두는 순간 기업은 망한다. 물러날 때를 알아라. 척준경은 왕을 도와 이자겸을 제거했지만 물러날 시간을 놓치고 벼슬을 살았다. 왕이 공을 인정해서 편의를 봐 주었지만 귀양 생활 중에 죽었다. 기업은 자신의 아이템이 더 이상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때까지 기다려선 안 된다. 미리 다른 아이템을 준비하라. 그래서 연구개발이 중요하고, 기술자를 우대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치와 경제가 뒤섞여 고속도로 건설 같은 국가 인프라 구축, 중화학공업 같은 미래 산업정책에 참여했던 기업이 성공해서 대기업이 됐다. 지금 떠오르는 기업은 네이버, 카카오와 게임·플랫폼 업체다. 자신의 기업이 거쳐갈 생로병사를 미리 생각하자. 정부 규제가 가슴 아파도 과거 방식에서 미래를 찾아선 안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국가지식재산위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