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 조카를 만나는 일은 최근 일상에서 큰 낙이다. 특히 자연스럽게 아이패드를 켜고서 유튜브를 보는 조카가 신기하기만 하다. 조그만 손가락을 재빠르게 놀리는 능숙한 조작 솜씨에 감탄사가 나온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단어를 말한다. 요즘엔 “택배 아저씨가 언제 오냐”는 말을 자주 한다. 장난감 선물을 가져오는 택배 아저씨를 기다리는 마음에서다. 코로나19로 인생 절반을 보낸 다섯 살 조카의 세상은 어쩌면 놀이터보다 모바일이 더 가까울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비대면 쇼핑이 일상화되면서 마트보다 모바일 화면이 익숙해졌고, 이러한 흐름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쿠팡이 연매출 22조원을 넘겨 유통 최강자로 올라선 것은 예견된 일일 것이다. 쿠팡이 사상 최대 실적을 발표하기 전날 이마트 노조가 호소문을 냈다. 노조는 코로나 위기와 온라인 쇼핑으로 산업이 변화, 수년간 유통 규제로 대형마트 노동자들이 생존권 위기에 처했다고 호소했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가 산업을 후퇴시키고 일자리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지난 2017~2020년 5년간 대형마트 23개가 폐점했고 3만2000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대형마트 매장은 점포당 약 50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협력사원을 포함하면 약 700명으로 늘어난다.
유통산업발전법은 2012년 도입된 것으로, 대형마트 '월 2회 휴무'와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 금지' '전통시장 반경 1㎞ 이내 출점 제한'을 골자로 한다. 전통시장 상권을 살리고 마트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이다. 법안 도입 후 지자체와 인근 상인들의 반대에 신규 출점은 무산되거나 답보상태에 놓였다.
유통 규제로 전통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란 이분법적 사고도 안일하다. 대형마트 이용 경험이 있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한국유통학회의 2019년 설문에 따르면 의무 휴업일에 전통시장을 이용한다는 소비자는 5.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온라인 쇼핑, 식자재 마트, 복합 쇼핑몰 등을 이용한다는 이는 50.8%에 달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최근 중소 유통업의 보호·육성을 위해 온라인 전환 등에 맞춘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규제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다. 이정희 중앙대 교수는 '중소유통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안' 제정을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중소유통의 효율적인 스마트화 △플랫폼과의 상생협력 △맞춤형 디지털화 지원 △중소유통 정책 정비 등을 제안했다.
급변하는 유통 환경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는 바뀌어야 한다. 안일한 이분법적 사고보단 전통시장을 살리는 방안을 찾는 마중물 역할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시기다. 새 정부 출범으로 유통 산업 발전을 위한 규제 혁신이 이뤄지길 바란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