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맛은 손맛이라는데 치킨, 피자, 샐러드, 커피 맛이 훌륭하다. 어느 요리사의 손길인가 했다. 알고 보니 로봇이 만들었다. 식당에서 서빙하는 로봇과 함께 주방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최근 음식을 조리하는 로봇이 논산훈련소에 입대했다. 현재 3000명분의 밥, 국, 조림, 튀김을 거뜬하게 만들어 내는 조리 로봇이 취사병을 돕고 있다.
이제 로봇은 스마트 공장이나 기존 제조 현장뿐만 아니라 식당에서 음식 제조, 서빙은 물론 배송 서비스, 수술·간호·재활·돌봄 등 의료서비스, 안내와 상업용 청소, 보안, 경비는 물론 건설, 농업, 국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과 자동화가 일반화되면서 로봇 활용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비대면은 곧 디지털 접촉(Digital contact)이다. ICBM(IoT, Cloud, Big Data, Mobile), 5G 등 첨단정보통신 기술의 융합이 본격화됐다.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 기술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고령화·저출산에 따른 일손 부족, 인건비 상승과 함께 산업대전환 시기를 맞았다. 디지털전환(DX), 디지털트윈(DT), 메타버스(MV)와 더불어 AI와 로보틱스가 미래를 바꿔 나갈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로봇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20년 세계 로봇 시장 규모는 약 243억달러로 최근 6년간 매년 10%대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OMDIA에 따르면 대표적 융합산업인 로봇산업 규모는 2026년 2860억달러(약 348조원)로 확대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세계 서비스로봇 시장의 성장률과 규모가 기존 제조 로봇 시장을 앞지르고 있는 것도 중요한 변화이다.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2에서 확인됐지만 지난달 28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된 MWC 2022에서도 AI, DX를 기반으로 한 '로보틱스'가 가장 주목받는 융합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위드 로봇(With Robot) 시대'가 본격 개막했으며, 일상생활에서 로봇과의 '공존'은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그동안 관망하고 있던 삼성, LG, 현대, 두산 등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로봇을 차세대 먹거리로 인식하고 본격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초고속·초연결·초저지연으로 대표되는 5G 구축에 전문성을 띤 KT, SK, LG 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는 AI·빅데이터·클라우드 역량을 융합해서 미래 서비스로봇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 공격적으로 로봇사업에 진출 중으로, 국내 로봇산업의 청신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2008년에 제정한 '지능형 로봇법' 시행 이후 세 차례(2009년, 2014년, 2019년)에 걸쳐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을 수립, 국내 로봇산업 육성정책을 마련했다. 로봇활용 표준공정모델 개발 및 중소제조 공정혁신을 위한 제조업용 로봇 보급, 정부 주도 서비스로봇 초기시장 창출, 로봇핵심기술 R&D 등을 추진해 왔다. 산업부는 국조실 및 관계부처 합동으로 '로봇산업 선제적 규제혁신로드맵'을 발표(2020년 10월)하고 규제샌드박스와 규제특구 등을 통해 규제극복과 신시장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0년 기준 국내 로봇 시장은 5조5000억원 규모이며, 연평균 5.4% 성장 추세다. 서비스로봇 시장은 전년 대비 34.9%가 증가한 8000억원 규모로 연평균 6.4% 성장하고 있다. 근로자 1만명당 로봇 활용 대수를 뜻하는 로봇밀도는 우리나라가 932대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고, 판매량 기준으로 세계 4위 수준의 산업용 로봇 시장 규모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는 자동차나 반도체, LCD, 전자산업 등 특정 분야에 산업용 로봇 보급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지 전체 산업에 널리 보급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또 중국의 가파른 로봇산업 성장으로 가격과 품질 경쟁력을 갖춘 서비스로봇의 국내 로봇 시장 잠식 우려가 있다. 그동안 적극적인 R&D 투자에도 로봇 기술경쟁력은 미국·일본·유럽에 이어 세계 4위 수준으로 최고기술 보유국 대비 제조업용 80%, 서비스로봇은 83.5%에 머무르고 있다.
이에 따라 급속한 제조환경의 변화, 인구구조 및 생활양식의 변화, 디지털 대전환 등 글로벌 메가트렌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K-로봇의 성장을 위해서는 로봇산업 자체의 육성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다. 산업 대전환기에 전 산업 분야의 혁신을 끌어내는 거시적 관점의 로봇 활용이 필요하다.
첫째 로봇 기반 디지털 혁신을 통해서 스마트 공장 가속화와 제조 산업 전 분야에 로봇을 선도 보급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최저임금 인상 및 주 52시간제 확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탄소중립 이슈, 넛 크래커(nut cracker) 위기 및 미래 신산업 주도권 확보 경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 품질 개선, 고위험·고강도·단순 반복 업무 대체 수행 등으로 제조업 디지털전환과 근로환경 개선에 기여해야 한다.
둘째 소상공인 경영 정상화 및 국민의 건강한 삶·돌봄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인 로봇 보급이 필요하다. 또 범죄 예방 등 사회 안전망 강화를 위한 로봇 활용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 초고령 사회 진입, 코로나19 팬데믹 장기화로 인한 소상공인·자영업자 애로 심화, 사회 안전망 부족 등이 대두됨에 따라 의료·복지·안전 사각지대 해소 및 생활 밀착 서비스 지능화 등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것이다.
셋째 현재 추진 중으로 실제 환경·시설을 모사한 로봇 테스트 인프라인 국가로봇테스트필드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로봇이 시장에 빠르게 출시되고 있지만 실제 환경을 모사한 테스트베드가 없어서 실험실 수준의 검증으로 성능, 안전성, 신뢰성 검증에 한계가 있었다. 규제 프리존으로 다양한 선제적 테스트, 비즈니스를 위한 트랙레코드를 거쳐 KS 인증, 세계 표준으로 이어지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넷째 미래 로봇산업 및 로봇 활용 인력을 위한 디지털 교육 강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로봇으로 인해 줄어드는 것만큼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는 로봇과 함께 일할 수 있는 디지털 스킬이나 로봇을 유지·제어할 수 있는 SW 역량이 필요하다. 사업주는 로봇 활용으로 생산성 향상과 산업재해가 줄어드는 만큼 로봇으로 대체된 근로자를 좀 더 나은 일자리로 전환시켜서 상생의 부가가치를 창출토록 해야 한다.
다섯째 앞에서 제시한 방안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범부처 차원의 협력과 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는 로봇 관련 예산·사업 등을 점검하고, 역할 배분을 통해 효과적으로 정부 사업이 추진되어야 한다. 규제개혁 또한 여러 부처의 법과 규정이 연관되어 있는 만큼 협력과 조정을 위해서도 컨트롤타워는 절실하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했다. 성큼 다가온 위드로봇 시대에 K-로봇이 국내 산업을 견인함은 물론 세계 로봇산업의 게임체인저가 되길 기대해 본다.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 shon@kiria.org
손웅희 한국로봇산업진흥원장은...
KAIST 연구원 시절 국내 최초의 4족 보행 로봇 KAISER 개발에 참여했다. 이후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개원과 함께 1990년에 이직해 30년 넘게 근무했다. 로봇기술본부장, 국가산업융합센터소장, 미래전략본부장, 융합기술연구소장, 부원장 등 주요 보직과 한양대, UST 겸임교수를 역임한 지능형로봇과 모빌리티, 융합기술과 산업정책 전문가다. 2021년 4월 한국로봇산업진흥원 5대 원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