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조만간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 매매업에 대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부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리면서다. 별도 제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부대의견을 제시했지만 완성차 제조사의 시장 진출 길이 열렸다.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3개 브랜드 각각 순차적으로 사업을 시작할 전망이다.
완성차 제조사가 중고차 사업에 진출하는 배경은 체계적 고객 관리 때문이다. 중고차 사업을 통해 수익 증대뿐 아니라 신차 판매에도 긍정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중고차 매입 과정에서 신차를 제안할 수 있고, 중고차 시장에서도 자사 차량에 대한 긍정적 경험을 제공해 향후 신차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고객 접점인 대리점 등에서 중고차를 매입하고 상품화한 뒤 판매한다. 온라인 판매와 탁송은 현대글로비스가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고차 금융과 관련해서는 현대캐피탈, 자동차 정비 부품과 관련해선 현대모비스 수혜가 기대된다.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 중 현대차·기아 점유율이 약 70%에 달하는 만큼 현대차의 진출은 중고차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
그동안 중고차 시장에서의 최대 문제로 꼽혔던 정보의 비대칭 해소가 기대된다. 매집 점검은 물론, 전문지식을 가진 현대차그룹 엔지니어들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정밀진단, 인증검사를 수행하고 차량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외부로 공개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품질검사 항목이 200여개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다.
완성차 제조사가 제공하는 보증 서비스로 구매한 차량에 대한 체계적 점검과 수리도 받을 수 있어진다. 기존에 보유한 차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신차 할인을 받는 '보상판매' 프로그램도 이용 가능하다. 현대차그룹은 차량 매입가도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책정할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서 시장은 기존 상사들 위주의 저렴한 일반 중고차와 고품질 인증 중고차로 양분될 것으로 예상된다. 불확실성으로 인해 저평가되던 중고차가 제값을 받을 수 있는 시장이 만들어지면 감가율이 줄어 신차 가격 책정과 판매에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시장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면서 거래 규모도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중소벤처기업부의 부대의견에 따라 중고차 시장이 완전 개방되는 건 아니다. 중소기업, 소상공인 피해가 없도록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가 적정한 조건을 내걸면 완성차 제조사들이 이에 맞춰 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앞서 현대차는 5년·10만㎞ 이하 자사 중고차만 인증 중고차로 판매하고 나머지 차량은 기존 매매업계에 공급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시장점유율을 2022년 2.5%, 2023년 3.6%, 2024년 5.1%로 제한하겠다고 발표했다.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최종 해지됐고, 완성차 제조사의 시장 진출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한다는 점에서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위도 강도 높은 조건은 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차그룹을 제외한 르노코리아자동차, 한국지엠, 쌍용자동차는 당장 중고차 시장 진출 계획은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고객 접점 관리 차원에서 이들도 향후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포함해 세계 여러 완성차 제조사가 각국에서 중고차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며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로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과정에서 고객과의 접점을 유지·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표>중고차시장 개방 논의 경과
박진형기자 j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