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업무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조차 'ESG'를 한번쯤 들어 본 시대가 도래했다. 경제·경영 용어인 것 같지만 국가 정상 간 대화에서 빠지지 않는 정치 의제가 되었고, 상당수 국민에게도 익숙한 단어로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기도 한다. 각종 언론은 올해 주주총회를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주제로 ESG를 꼽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 수급 불확실성이 증가하며 한동안 ESG에 대한 논의가 다소 주춤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지난 16일 엠마누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EU 회원국들이 탄소국경조정세(CBAM) 부과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작 발등에 불은 EU 내에서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역내 기업 못지않게, 우리나라와 같이 EU 밖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역외 기업들에게 떨어졌다. 그리고 21일(현지시간)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투표를 통해 ESG 테스크포스(TF)가 추진하는 기후변화 공시에 대한 법률을 정비할 계획이다. 결과에 따라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ESG는 기업뿐 아니라 입법부와 행정부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현안이 됐다. 그렇다면 ESG는 왜 입법부와 행정부의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됐으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ESG에 대한 국제적 논의는 1987년 UN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로 브룬틀란 보고서(Brundtland Report)라 불리는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 보고서를 통해 지속가능한발전(SDG) 개념을 제시하며 환경·사회적 이슈를 국제 정치 전면에 부각시킨 것이 계기가 돼 독립된 정치 의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2005년에는 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UNEP FI)가 기업 투자 의사결정 시 지속가능한발전 관점에서 기업과 투자자들이 고려해야 할 요소를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세 가지 카테고리로 제시하며 ESG라는 용어가 본격 확산했다. 2006년에는 UN책임투자원칙이 출범하며 ESG는 자본시장의 흐름을 결정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잡았다. 종합하면 ESG는 지속가능한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프레임이라 할 수 있다. 이후 ESG는 각국 정부와 금융 당국의 정책 결정에 고려돼야 할 중요한 연성 규범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미 세계 경제 시스템은 지속가능한 경제체제(Sustainable Economy)로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ESG에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답은 정해져 있다.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을 하면 된다. 우선, ESG를 단순히 환경·사회적 관점이 반영된 지표의 합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선순환을 구현하는 프레임으로 인식해야 한다. 이를 통해 질병, 기후변화, 환경오염과 같이 인류사회가 직면한 환경적, 사회적 문제들을 위협으로 인식하기 보다 기술혁신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해 더 큰 경제성장을 일으키는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ESG 기반 기업을 육성해 기존에 없던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글로벌 공급망에서 ESG 성과가 뛰어난 우리 기업들의 자리가 더 굳건하도록 강력한 ESG 육성 정책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ESG 선순환 구축을 가능케 하는 'ESG 기본법' 도입이다. 현재 국내에서 ESG 정보공시, 탄소중립, 공공조달 등 서로 유기적이지 않고 파편화된 정책들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업들은 ESG를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만들지 못하고 단순한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ESG 기본법은 국가의 정책 결정에 있어 ESG를 기본적으로 고려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특정 정부부처나 산하 기관에서 ESG를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운영 전반에 ESG가 고려되도록 해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경제체제로 전환을 유도할 수 있다. ESG에 대한 논의에 여야가 따로 있지 않다. 누가 더 ESG 정책을 선점했는지 경쟁도 무의미하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초당적 협력을 통한 'ESG 기본법'과 같은 정책 도입을 기대해 본다.
김동수 김앤장 ESG경영연구소장 dongsoo.kim@kimch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