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윤석열 정부와 원자력 진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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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질서는 과학기술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특히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술개발은 치열하다. 우리나라도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NDC) 계획을 확정했다. 문제는 실현 방안과 가능성이다. 정부는 탈원전 기조를 고수한 채 재생에너지 비율을 지나치게 확대했다. 우리나라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입지 조건에서 불리하다.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공급 안정성이 세계 42개국 가운데 '꼴찌'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반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국제기구는 원전이 가장 안전한 친환경에너지라고 규정하고 원전 확대를 강조한다.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등도 신규원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만 대세에 역행하는 셈이다. 현재 기술로는 원전 없는 탄소제로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원전을 배척하면서 탄소중립은 미래세대를 위한 의무라고 강요하는 것은 맞지 않다.

대한민국 원자력산업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출은 멈췄고, 영국 원전은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상실했다. 5년간 수주 실적 제로에 수출길이 막혔다. 우수 인력 유출, 지역 경제 침체, 중소기업의 줄도산 등 피해 금액만 1000조원에 이른다. 여기에 불안정한 국제정세와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겹쳐 에너지안보는 불안해졌고, 전기 요금은 국민부담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난국을 초래했다. 공교롭게도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할수록 주력 기저전원으로서 국민들의 원전 선호도는 높아졌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결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촉구 범국민 서명운동에 100만명이 넘어섰다. 지난 3년간 아홉 차례 설문조사 결과가 대표적 예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과학기술 중심 국정운영을 강조하며 원전산업 생태계 활성화와 세계 최고 원전기술 복원을 약속했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범정부 원전수출 지원단 운영, 한·미 원자력동맹 강화,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 적극 개발, 과학기술 기반 국민과 함께하는 원자력 정책 추진 등을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다.

차기 정부에서 이 사안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스템과 내실을 재정비해야 한다. 첫째 원자력정책 컨트롤타워가 시급하다. 개발-규제-실증-상용화-수출 등 전 과정에 산업부, 과기부, 원안위의 소통 부재가 심각하다. 사용후핵연료의 경우 환경부, 외교부, 국방부까지 업무가 걸쳐 있지만 부처 간 칸막이가 심하다. 수출 분야는 산업부, 한수원, 한전 등 부처와 공공기관 매달려서 될 문제가 아니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 때 북한경수로기획단과 함께 범부처 차원의 지원체계가 구축되어야 한다.

둘째 신한울 3·4호기는 물론 원래 추진하기로 했던 천지 1·2호기, 대진 1·2호기와 같은 신규 원전 건설이 병행되어야 원전 생태계가 빠르게 복원될 것이다. 에너지기본계획과 전력수급계획도 충분한 재논의가 필요하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기술은 사람이 만드는 것인 만큼 우수 인력 양성과 유입을 위한 프로그램 및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정부와 원자력계는 대국민 소통을 극대화해야 한다. 원자력은 안전하다고 일방적인 이해를 강요할 것이 아니라 관련 기관에서 최고의 과학 기술력으로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국민 눈높이에 맞춰 정부가 원전 관리를 위해 어떻게 기술적·제도적으로 노력하는지를 소통해야 한다.

원자력계도 달라져야 한다. 원자력계를 향한 공격의 가장 큰 빌미는 소통 부재와 폐쇄성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원자력 마피아라는 오명까지 생겼겠는가. 내 분야만 옳다고 고집하지 말고 전체를 보고 함께 가야 한다는 인식을 해야 한다.

5월이면 통합과 합치를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 필자는 원자력계 또한 '국민과 함께하는' 원자력이 되기를 바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문재인 정부의 홀대에도 원자력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APR1400, 혁신형 i-SMR, 파이로프로세싱 등이 그 방증이다.

먼저 APR1400은 정·산·학·연이 합심해서 1992년부터 차세대원자로를 목표로 개발한 결과다. 미국과 유럽 기준을 통과한 설계, 우수한 시공 경험, 기존 3세대 대비 10분의 1 이하로 감소한 사고율, 항공기 충돌에도 입증된 안정성을 바탕으로 수출로 이어진 성공 상품이 되었다. 혁신형 SMR(i-SMR)는 지난 20년간 1세대 SMR SMART를 개발하며 축적한 노하우의 결과물이다. 2세대 i-SMR는 안전계통 단순화 설계로(일체형원자로, 무붕산운전) 자연냉각이 가능하다. 대형원전(OPR 기준) 대비 최대 1만배의 안전성을 확보해 중대사고 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성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8년 인허가를 목표로 경제성·안전성을 대폭 향상해 총사업비 6000억원 규모로 오는 5월 발표될 타당성조사 결과에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파이로 프로세싱은 문재인정부 집권 초에 핵비확산성을 이유로 고속로 실증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다.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로부터 우라늄 등 유용한 원소를 회수하고, 고독성·고방열 핵종들을 분리수거함으로써 처분 부담을 줄일 수 있는 기술이다. 1997년 기술개발을 시작으로 2011~2020년 한·미 원자력연료주기 공동연구(JFCS)가 미국에서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국내 연구진은 모의핵연료를 사용한 기술개발에 성공했다.

미국은 기술성·경제성·핵비확산성 타당성을 확인했으며, 지난 2020년 7월 양국 정부는 JFCS 10년 보고서를 승인했다. 지난해 12월 20일 과기부는 연구 지속을 결정했고, 27일 원자력진흥위원회에도 후속 기술개발을 의결했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파이로 연구 지원을 약속했다. 우리나라가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없이 임시저장만 하는 것을 감안하면 파이로는 매립 이외에 최적의 대안이다.

세계가 원자력 르네상스를 맞는 지금 대한민국이 다시 세계 정상의 위치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모두 힘을 합쳐 원팀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APR1400과 SMART를 성공한 저력이 있다. 원자력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에너지 수급 여건, 국민 편익, 경제성 등을 고려했을 때 최선의 대안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기술이다. 과학기술 경쟁력은 국가 경쟁력의 척도가 된다. 과학은 국민 현실 문제 해결과 경제, 안보 등 국가 전 분야의 성장동력이다. 이제 탈원전에서 벗어나 원자력 기술강국으로 다시 나아갈 때다.

김영식 의원은…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경북 구미시을)은 영남대를 나와 미국 아이오와대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기계공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21대 국회에서 몇 안 되는 전통 과학기술 출신 의원이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선임연구원, 금오공대 기계공학부 교수, 6대 금오공대 총장을 역임했다.

21대 국회부터 의원 활동을 시작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국가 과학기술 및 ICT, 디지털, 원자력 분야 육성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내에서는 미래일자리특위, 반도체특위, 탈원전피해 특위에 참여하면서 과학기술 기반 산업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최근에는 탈원전 반대 및 신한울 3·4호기 재개 촉구 100만명 서명돌파 국민보고대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김영식 국민의힘 의원 yeungshik2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