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가 통제 불가능한 '적자 늪'에 빠졌다. 에너지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세 차례나 유보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인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까지 현실화하면 한전의 재무 상황은 통제할 수 없는 악화일로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해 한전 연결기준 차입금 잔액은 약 80조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부채비율도 223.3%로 2013년에 이후 처음 200%를 넘었다. 한전은 올해 1분기에만 약 10조원을 추가 차입했다. 차입금 잔액이 9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전의 재무 악화는 정부가 '원가연계형 전기요금체계(연료비 연동제)'에 개입하면서 전기요금 원료비를 반영하지 못한 탓이 크다. 올해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을 주저하면서 한전 재무악화가 방치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악의 경우 한전이 발전사에 전력구입비를 지불할 수 없는 사실상 '부도'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 경우 발전 회사까지 연쇄 수익 악화가 불가피하다.
◇정부, 야심차게 '연료비 연동제' 도입했지만 번번이 '퇴짜'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은 지난해 1월부터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실행했다. 유연탄·천연가스·유가를 연료비 연동 지표로 삼고, 연료비 변동분을 매 분기 반영하는 것이 골자다.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면서 2013년 이후 한 차례도 인상되지 않았던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적인 연료비 상승에도 전기요금은 인상되지 못했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정부와 한전은 다섯 차례 조정에 나섰지만 이 중 세 차례는 정부가 유보 권한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분기에는 연료비 조정요금을 한 차례 인하했고, 지난해 4분기 인하된 요금을 원상복구하는데 그쳤다.
또 이번 달까지 올해 2분기 연료비 조정요금을 결정해야 하는데 산업부와 기획재정부가 시행하는 정부 협의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둔 여야의 '샅바싸움'과 지방선거를 앞둔 행정부의 '눈치보기'로 인해 현 상황이 길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증권가에서는 한전이 올해 최대 20조~30조원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전은 지난해 5조8601억원 영업손실(연결기준)으로 역대 최악 적자를 기록한 바 있는데, 올해는 이보다 약 4배가 넘는 손실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해의 전기요금 원가부족액을 반영해 다음 달과 10월에 총 ㎾h당 11.8원 요금을 인상할 예정이었지만 윤석열 당선인이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에너지 원자재 무섭게 상승...한전, 사상 초유 위기 올수도
문제는 세계적인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한전의 재무압박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전은 매출의 85%는 연료구입비에서 결정되는데 최근 2년 사이 연료비가 대폭 상승했고, 지난해부터는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두바이유는 지난 7일 기준 배럴당 125.19달러까지 상승해 2020년 평균 배럴당 42.3달러와 비교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뉴캐슬탄은 톤당 427.50달러로 2020년 평균 60.4달러보다 7배 넘게 올랐고, 액화천연가스(LNG) 현물가격은 영국 열단위(MMbtu)당 84.7달러로 2020년 평균 4.4달러에 비해 20배 가까이 증가했다.
특히 한전이 발전사에서 전력도매가격(SMP)은 2020년 ㎾h당 68.9원에서 지난 1일에서 7일은 193.2원으로 3배 넘게 상승했다. SMP가 ㎾h당 90~100원이 넘으면 한전은 전력을 판매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SMP가 작년 8월부터 지속 ㎾h당 90원이 넘은 것을 감안하면 한전은 6개월 넘게 전력을 팔아도 손해 보는 구조를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에너지 업계는 한전의 심각한 부채로 인해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진단한다. 올해 하반기 발전사에 전력구입비를 지불하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제기한다.
에너지업계 한 고위 관계자는 “오는 6월 지방선거까지 정치 변수로 인해 요금 조정이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면서 “현행 요금이 지속되면 한전은 부도 위기까지 갈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업계 다른 관계자 또한 “한전이 올해 1월부터 10조1000억원을 차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한전이) 사채를 무한정 발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력구입비를 상환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