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업계는 새 정부 주요 제도개선 과제로,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내에서의 사회적 책임 분담을 통한 공정한 ICT 생태계 조성을 꼽고 있다. 새 정부가 공약으로 내놓은 과학기술 선도국가 달성을 위한 디지털 인프라 고도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전기통신사업법 전면 개정을 앞둔 가운데, 통신업계에서는 부가통신사업자와 기간통신사업자의 수평 규제와 구글·넷플릭스 등 글로벌콘텐츠제공사업자(CP)의 망 이용대가 무임승차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ICT 생태계 성장과 디지털 격차 해소 등을 위해서는 새 정부에서 관련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디지털 공정기금' 조성으로 사회적 책임 강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현함과 동시에 국민간 디지털 격차를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통신업계는 이 기조에 발맞춰 '디지털 공정기금(가칭)' 조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생태계 참여자가 함께 사회적 책임을 나누고, 취약계층 수혜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디지털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재 제도상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대표 정책은 취약 계층 통신요금감면제도다. 하지만, 주체가 기간통신사업자에 한정돼 다양한 분야의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지난해 일반 국민 대비 디지털 취약계층의 디지털정보화 수준은 75.4%로 나타났다.
이에 통신업계는 디지털 공정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간 기금은 통신사가 제공해오던 기존 취약계층 요금감면액에 더해 부가통신사업자와 단말 제조사의 연 매출액 일정 비율을 기금에 납부하는 방식 등이 거론된다. 디지털공정기금과 관련한 제도개선 논의는 이미 국회에 관련법이 제출돼 있다. 윤 당선인과 여당의 의지에 따라 도입시기가 결정될 전망이다.
◇디지털바우처, 디지털격차 해소 수단으로 제안
조성된 기금은 공약에 제시된 '디지털 바우처'를 활용해 수혜자에 전달할 수 있다. 취약 계층 이용자에 일정 금액 바우처를 지급하고, 기존 통신요금만 할인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체해 디지털 기기 구입, 플랫폼 서비스 등 이용자가 필요한 분야를 직접 결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디지털 공정기금으로 정산하는 방식이다.
바우처 제도 도입시 취약계층 가입자 또한 일반 이용자와 동일한 매출이 발생해 사업자의 고객 유치를 위한 적극적 홍보 및 지원 유인 또한 발생한다. 수혜자 측면에서는 통신비 감면뿐 아니라 맞춤형 디지털 서비스를 이용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에 서비스 선택권 확대 및 이용 촉진을 통한 디지털 격차 해소에 실질적인 기여가 기대된다. 통신사뿐만 아닌 부가통신사업자 등 디지털 생태계 모든 사업자의 참여로 디지털 공정 실현의 기반 환경 또한 마련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기존 취약계층을 위한 통신비 감면은 통신사가 전체 재원을 부담해왔다. 2020년 통신사업자가 부담한 요금감면액은 1조원 규모로 통신 3사 영업이익의 3분의 1을 상회하기도 했다. 특히 통신 3사는 2017년 12월 저소득층 요금감면 확대와 2018년 7월 기초연금 수급자 요금감면 시행 이후 노령화가 지속되는 사회 현상 속에서 감면액이 급증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김도훈 경희대 교수는 “메타버스, NFT, 디지털트윈 등이 이끄는 디지털 대전환의 시대에 취약계층이 새 서비스를 잘 누리지 못할 수 있다”며 “통신사뿐만 아니라 부가통신사업자, 단말기 제조사, 정책당국 등 ICT 생태계 핵심 주체들이 함께 참여해 공정한 책임 분담을 통한 디지털 격차 해소를 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망 이용대가 공정계약 논의 지속
통신업계는 글로벌 CP에게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도 주장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관련 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인터넷 연결에 따른 대가 지불 의무를 법원이 인정한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의 협상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전기통신사업법상 의무 부과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통신업계는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공을 위해 이용한 망의 트래픽 규모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전체 ICT 생태계가 지속적으로 성장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는 캐시서버(OCA) 설치를 이유로 대가 지불을 거부하고 있지만, 통신사는 이는 국내 인터넷 인프라 등 ICT 투자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응수하고 있다. 캐시서버를 국내에 설치하더라도 국제 구간 트래픽만 감소하고 국내 구간의 트래픽 양은 변화가 없다는 이유다. 이 경우 국내 구간 트래픽 비용은 여전히 국내 인터넷사업자가 부담할 수밖에 없다. 통신사는 지난 5년간 유무선 인프라에 연평균 약 7조2700억원을 투자하는 등 폭증하는 트래픽을 수용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일명 넷플릭스법이라고 불리는 부가통신사업자의 서비스 확보 의무 등이 시행됐지만, 해외CP에 대한 의미있는 집행력이 확보되지 않으면 국내 사업자에 대한 규제만 강화되고 입법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해외 CP가 자사 콘텐츠 제공을 위해 이용한 망의 트래픽 규모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전체 ICT 생태계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예린기자 yesl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