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반도체 팹리스와 스타트업이 차세대 반도체 시장에서 고사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3나노미터 이하 첨단 공정 반도체 설계 비용이 최대 7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BS는 3나노 공정을 활용하는 반도체 디자인(설계) 비용이 최대 5억9000만달러(약 72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같은 최첨단 반도체는 3나노미터 이하 미세공정으로 구현할 수 있다. 천문학적인 초기 설계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도전조차 할 수 없는 셈이다. 실제로 3나노 반도체 설계가 가능한 업체로는 삼성전자, 퀄컴, 애플, 엔비디아, AMD 등이 꼽힌다. 하나같이 자본력이 막강한 공룡 기업이다.
소수 기업이 주도하는 시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건전하지 못하다. 하나는 혁신이 더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혁신은 획기적인 개념 설계와 무수한 실험을 반복하는 스케일업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소수 몇몇 기업보다 여러 기업이 끊임없이 도전할 때 '파괴적 혁신'이 일어난다. 또 하나는 독과점의 병폐다. 공급을 독점하면서 가격과 공급망을 교란할 수 있다.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크게 두각을 드러낼 수 있는 분야로 반도체가 꼽힌다. 시스템반도체 강국의 꿈도 AI 반도체에서 도전해 볼 만하다. 정부 당국의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과거 미국이 메모리 반도체 헤게모니를 일본에 넘겼지만 시스템 반도체 산업으로 부활했던 것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미국 정부는 우주 탐사 프로젝트와 같은 대형 국책과제를 만들고 자본력이 없던 미국 반도체 업체에 정부 R&D 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굴지의 시스템 반도체 업체가 속속 탄생했다. 기술력과 창의력이 있는 중소 팹리스가 채 피지도 못하고 사라지는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