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총리가 정부 방역 성과를 폄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김 총리는 최근 공개석상에서 “인구 대비 확진율과 사망률, 누적 치명률, 각종 경제지표 등을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해 달라”면서 “2년 이상 계속된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인구가 우리와 비슷한 세계 주요국과 비교할 때 국민 희생을 10분의 1 이내로 막아냈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장 확진자 숫자만 놓고 '방역 실패'니 하는 것은 국민을 모욕하는 말이다. 그래서 용납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누가, 무엇을 용납할 수 없는지 모르겠지만 'K-방역'이라는 표현을 만들었던 정부임을 생각하면 이런 격앙된 반응은 이상하다. 정부는 아마 언론이 의도적으로 방역 성과를 폄훼하고 있고, 국민이 이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까 걱정하는 듯하다. 정권 교체기에 방역 정책이 '실패'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느껴진다.
현실을 돌아보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 누적 사망률이 주요 국가보다 낮을지 모르지만 최근 데이터를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방역 당국도 인용하는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이달 1~30일 기준 코로나19로 인한 한국의 사망자는 인구 100만명당 6.48명이다. 독일(2.71) 미국(2.08), 영국(2.23), 싱가포르(1.13), 일본(0.73) 등 주요 국가와 비교해서 3배 이상 높은 수치다. 세계보건기구(WHO)가 30일 발표한 주간 역학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4주 연속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규 확진자가 발생한 나라다. 확진자가 많으니 하루 사망자가 연일 300~400명대를 넘나든다.
현장도 혼란의 연속이다. 의료진은 코로나19에 감염돼도 확진 사흘 후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있다. 일선 약국에서는 소아용 해열제가 부족해서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언론에서 'K-방역 실패'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정부가 그동안 내세웠던 자화자찬의 반작용이다. 그토록 방역을 잘해 왔다고 강조해 왔는데 왜 혼란이 점점 심해지냐는 합리적 지적이자 비판이다. 정부의 자기 자랑이 독이 된 셈이다.
현 사태에 정부 책임은 진짜 없을까? 오미크론 전파력이 높아서 어쩔 수 없다고 하기에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한몫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전문가 반대에도 연초부터 방역을 풀었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 큰 선거를 앞두고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자영업자를 옥죄는 것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끝이 보인다며, 괜찮다며 별다른 대책 없이 희망찬 메시지를 계속 내놓은 것도 패착이다. '독감 수준'이라며 오미크론 피해가 별것 아닌 것처럼 인식이 퍼지다 보니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정부가 지금 할 일은 “성과를 폄하지 말라”며 역정을 낼 것이 아니라 최대한 현 상황을 연착륙시키는 것이다. 국민에게 솔직하게 이해를 구하고 엔데믹으로 전환하는 문을 열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과제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코로나 팬데믹에서 우리나라가 그나마 선방해 왔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곧 집권할 야당은 현 정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집권 후 전 정권에 방역 상황 책임을 돌리려는 것 역시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에 대한 평가는 국민이 하는 것이다.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한다면 잘하고 있다고, 열심히 하고 있다고 애써 항변하지 않아도 된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