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벌의 윙-윙- 소리가 자취를 감췄다. 지난 겨울, 전국 양봉 농가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국양봉협회가 지난 3월 2일까지 전국의 협회 소속 농가를 대상으로 피해를 조사한 결과, 전국 227만6593개 벌통 중 39만517개에서 피해가 확인됐다. 전라남도, 경상남도, 제주 지역 피해가 특히 컸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월동에 들어가는 시기 벌통 안에 사는 꿀벌 개체 수는 약 1만5000마리로, 양봉협회 통계를 통해 추산하면 지난겨울 전국에서 약 60억 마리 꿀벌이 사라진 것이다.
농가들은 월동 중인 벌을 깨워 먹이를 주는 '봄 벌 깨우기' 과정에서 꿀벌이 벌통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월동 기간 벌통 밖을 벗어난 꿀벌들이 다시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 전국적으로 꿀벌이 사라진 것은 2010년 꿀벌 감염병 '낭충봉아부패병'이 유행하며 토종벌 90% 이상이 폐사한 이후 두 번째다.
꿀벌의 집단 실종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꿀벌 군집 붕괴 현상(CCD, 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2006년 11월 미국에서 처음 보고됐으며 당시 미국에서는 지역에 따라 25~50% 꿀벌이 감소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에 따르면 이 시기 이후 매년 평균 28.7%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유럽, 남아프리카, 중국 등의 지역에서도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꿀벌 집단 실종 원인은 복합적?
올해 전국에서 꿀벌이 집단으로 사라진 이유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농촌진흥청은 지난 14일 꿀벌 피해 민관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재로서는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추측한다고 밝혔다.
이상기후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가을은 평년보다 낮은 기온으로 어린 꿀벌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는데, 반대로 겨울은 평년보다 기온이 높아 꿀벌들이 평소보다 일찍 활동에 나섰다. 그러다 다시 기온이 일시적으로 낮아진 시기에 체력을 다 써버린 꿀벌들이 벌통으로 돌아가지 못해 집단으로 폐사했다는 설명이다.
다른 주요 원인으로는 해충이 꼽힌다. 농촌진흥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 피해 농가에서 꿀벌응애(Varroa destructor)가 관찰됐다. 꿀벌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면서 체액을 빨아먹는 진드기로, 꿀벌응애로부터 피해를 입은 꿀벌 집단은 체중과 수명이 줄어들어 끝내는 붕괴에 이른다. 꿀벌응애는 기온이나 강수량에 따라 발생하는 시기가 달라지고, 발생 시기에 방제를 놓치면 급격한 증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외에도 검은 말벌 등 꿀벌 포식자가 번성, 과도한 양의 살충제 살포도 피해를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꿀벌 집단 실종 현상 역시 이와 비슷하다. 한 가지 뚜렷한 원인이 아닌 기후변화, 해충 대발생, 신종 바이러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추측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높은 사육 밀도, 편식으로 인한 영양소 불균형 등으로 인한 꿀벌 면역력 저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꿀벌 실종, 식량 위기와 생태계 붕괴 초래할 것
꿀벌의 실종은 인류에게도 큰 위협이 된다. 꿀벌은 인간이 재배하는 작물 1500종 중 30%의 수분을 책임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꿀벌은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는다. 실제로 올해 꿀벌 집단 실종으로 인해 국내 농가는 참외, 딸기, 호박, 오이, 수박 등 작물 수확에 큰 피해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꿀벌이 사라지면 작물을 수분시키기 위해 사람의 노동력이 투입되거나 새로운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이는 작물 공급량 감소, 작물값 상승으로 이어져 세계적인 식량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2015년 하버드 공중보건대 연구팀이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꿀벌이 사라질 경우 작물 생산량이 줄어 식량난과 영양 부족으로 한 해에 142만명 이상이 사망하게 된다.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멸종하면 인류도 4년 안에 사라진다”고 말한 끔찍한 경고가 실재하는 위협이 된 것이다.
◇AI, 유전자 조작…꿀벌 보존을 위한 최첨단 기술 총출동
손 놓고 꿀벌의 멸종을 두고 볼 수만은 없다. 과학자들은 꿀벌의 멸종을 최대한 막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고안하고 있다. 스위스 로잔연방공과대학(EPFL) 연구팀은 2019년 인공지능(AI)을 이용해 꿀벌응애 개체 수를 확인하는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했다. 벌통을 촬영한 사진을 앱에 업로드하면 AI는 수초 만에 꿀벌응애 수를 계산해낸다. 이 기술은 양봉 농가에서 꿀벌응애를 없애기 위한 적절한 방제 시기를 알아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꿀벌응애에 영향을 받지 않는 '슈퍼꿀벌'을 만드는 연구도 있다. 2020년에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은 유전자 조작 기술을 활용해 꿀벌응애에 노출돼도 끄떡없는 꿀벌을 탄생시켰다. 본래 RNA는 DNA 유전정보를 복사해 단백질을 만들지만, 일부 RNA는 단백질을 만들지 않고 다른 RNA와 결합해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는 'RNA 간섭' 현상을 활용했다. 간섭 RNA가 꿀벌에 침입한 꿀벌응애의 생존에 필수적인 유전자와 결합해 기능을 차단하게 한 것이다. 10일 동안 실험한 결과, 간섭 RNA가 체내에 있는 꿀벌에서는 대조군보다 꿀벌응애가 70%나 더 많이 죽었다.
영국에서는 대규모 데이터를 수집, 최적의 꿀벌 생육 조건을 알아내려는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지능형 벌통 5만개를 설치해 꿀벌 25억 마리의 움직임, 꿀 산출량, 벌통 온도와 습도 등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월드 비 프로젝트'다. 프로젝트에서 수집된 데이터는 클라우드 네트워크에 업로드되고, 전문가들은 이 데이터를 토대로 꿀벌 생육에 영향을 주는 요인을 분석할 수 있다. 월드 비 프로젝트는 꿀벌 보존을 위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수집된 데이터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이대로의 추세가 지속된다면 꿀벌의 전망은 밝지 않다. 꿀벌의 개체 수 감소는 인류에게 직격탄이 될 수 있는 만큼, 과학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글: 박영경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