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디지털 대전환, 새로운 미디어 100년 도약 계기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회 여러 분야에서 디지털 대전환이 가속되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미디어 분야의 변화는 체감도나 영향력이 크다. 특히 디지털 대전환 대표 사례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메타버스는 미디어 외연을 확장하고 서로 경계를 소멸시키면서 사회·문화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 단순한 전송방식 변화를 넘어 '1인 저널리즘' 부상, '가상현실(VR)' 열풍, 'K-콘텐츠' 확산 가속화 등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미디어 관련 법과 제도는 기존 전송방식에 따른 경직된 분류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급변하는 환경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동일한 콘텐츠를 제공하더라도 지상파방송·케이블TV·인터넷과 같이 전송 네트워크가 다르면 시장 진입과 소유, 광고와 편성에서 차별적 규제가 이뤄진다.

칸막이식 차별 규제는 전통 사업자에는 형평성 문제, 새로운 사업자에는 불확실성을 일으킨다. 이 때문에 법과 제도가 현실 변화에 앞서 나가기보다는 뒤따르면서 안정성을 부여하는 속성을 띤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행 법제는 지나치게 낡은 틀이 되어 혁신을 지체시키는 요인이라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그간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서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 마련을 검토해 왔으며, 글로벌 경쟁 상황에서 국내 미디어산업의 역차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해 왔다. 특히 올해는 미디어 정책에 대한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토대로 미디어 산업 경쟁력 제고와 융합 환경 미디어의 공적 가치 담보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규제체계 전환을 추진하고자 한다.

미디어를 기능 관점에서 '콘텐츠'와 '플랫폼'으로 분류하고 기존 분류체계를 기반으로 한 낡고 불필요한 규제는 해소해 나갈 계획이다. 예를 들어 여론 독점 방지와 다양성 제고를 위해 도입한 규제는 과거 네트워크 자원이 한정된 환경을 전제로 한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콘텐츠와 플랫폼이 무한 확장되는 오늘날에는 애초의 목적 달성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디어 경쟁력 제고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ET시론]디지털 대전환, 새로운 미디어 100년 도약 계기로

미디어 분류체계 개선과 함께 기존 규제는 원점에서 검토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히 개선해 나갈 것이다. 새롭게 마련할 미디어 분류체계는 디지털 미디어 분야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한다. OTT 등은 본질이 디지털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지만 현재는 여러 법에서 파편적으로 규율되고 있다. 이 경우 미디어 특성과 무관한 법규가 과도하게 적용되거나 개별법 산발적 개정으로 인해 중복규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이에 따라 미디어 전반을 포괄하는 법체계를 마련해 디지털 미디어에 대한 규제 불확실성과 중복규제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다만 법적 지위 마련이 규제 강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체계를 도입하고 미디어 진흥을 위한 정책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핵심인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가 전통적 미디어의 기능과 융합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주목하고자 한다. 특히 의사소통에서 물리적 한계가 없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타버스 등으로 관념적 개념에 가깝던 이른바 '디지털 시민사회'가 눈앞의 현상으로 펼쳐지고 있다. 올바른 디지털 시민의식에 대한 논의를 포함해 경제·산업적 가치로 주목받아 온 ICT 분야가 사회문화 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정책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방통위는 얼마 전 민·관 합동으로 구성된 '메타시대 디지털 시민사회 성장전략 추진단'을 출범시키고 범정부 메타버스 협의체에 참여하는 등 디지털 시민사회의 성장 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미디어 간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디지털 미디어 빅블러 현상' 앞에서 앞으로도 시민의 이용자 권리와 소비자의 이용자 복지를 최우선 목표로 두면서 미디어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유연하고 탄력적인 정책 방안을 마련해 나갈 것이다.

변화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미디어의 공적 가치를 담보하는 일은 여전히 소홀히 할 수 없는 과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소외계층의 미디어 접근권 확대, 전 국민 대상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제고, 미디어 자유와 독립보장 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다만 현행 방송관계법이 모든 사업자에 대해 동일한 공공성의 원칙을 제시해서 제도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사업자 유형별로 공적 가치와 책무를 섬세하게 차등화하고자 한다. 민간 영역에 대해서는 정부가 시장의 비효율성을 방지하기 위한 중재자 역할을 한다면 공영방송에 대해서는 차별화된 공적 책무를 구체적으로 협약 등을 통해 반영하고, 책무가 실제로 이행될 수 있도록 평가와 환류체계를 제도화할 것이다.

1927년 일제강점기에 경성방송으로 출발한 우리 방송이 이제 몇 년 뒤면 100주년을 맞는다. 방송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는 오랜 시간 정치·경제·사회·문화 발전에 이바지하며 국민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여가를 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 왔다. 디지털 대전환을 계기로 미디어 생태계가 변하고 있지만 본질적 기능과 가치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방통위는 미디어 환경의 역동적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다가오는 새로운 100년도 미디어가 지속 성장하며 국민의 행복과 복지 증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한상혁 위원장은…

방송·통신 분야에서 활동해 온 미디어 전문 변호사다. 법무법인 정세 대표,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지냈다. 2019년 9월 방송통신위원장에 임명됐다. 낡은 규제 개선을 통한 방송·통신 시장 활성화에 관심이 많다. 소외계층 대상 미디어 포용, 재난방송 강화, n번방 대책, 미디어 리터러시 등 방송·통신 이용자의 권익 보호 정책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