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국정철학과 '데이터·ICT' 거버넌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대선 이후 국정운영 거버넌스, 특히 정부 조직 개편을 둘러싼 전쟁이 시작됐다. 차기 정부를 누가 이끌 것인가는 국민 초미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막상 다음 정부가 어떤 조직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해 일반 국민은 많은 관심을 두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 입장에서 어떤 부처든 결국 모두 하나의 정부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반면 정부 조직 개편 대상으로 떠오른 부처는 존속의 정당성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 정부의 핵심 공약이나 주요 국정과제를 담당할 것으로 예상되는 부처는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한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 부처 개편에 영향을 받는 민간 사업자나 이해관계자도 관련 부처의 향방에 따른 영향력을 가늠하며 각자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규제 틀을 주장하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11부 4처 3위원회로 출발했던 정부 조직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18부 4처 18청으로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때 15부 2처 18청으로 다소 감소했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17부 3처 17청, 문재인 정부에서 18부 4처 18청 7위원회로 확대됐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시대 요구나 국정 비전에 따라 새 부처 신설이나 기존 부처 통폐합 등 다양한 정부 조직 개편이 이뤄졌다.

[ET시론]국정철학과 '데이터·ICT' 거버넌스

정보통신기술(ICT) 전담 부처는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의 중심에 있었다. 1994년 김영삼 정부에서 처음 정보통신부가 신설된 이후 우리나라 정보화에 앞장섰지만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조직 개편으로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로 업무가 분산·이관됐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과학기술과 ICT 혁신 업무를 통합해 미래창조과학부가 신설됐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 개편되면서 폐지되고, 스타트업 등 미래 경제 업무는 신설된 중소벤처기업부로 이관돼 현재에 이르렀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등장한 ICT 전담 부처가 큰 변화를 겪은 것은 급격한 ICT 환경 변화와 발전에 대한 우리 사회의 평가, 정부 역할에 대한 시각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지향하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ICT 전담 부처를 둘러싼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이유다. 어느 나라보다 정보화 혁명의 혜택을 받은 우리나라는 디지털 대전환기를 맞고 있다. 미래 경쟁력 확보를 통한 지속 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이야말로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여러 선진국도 데이터·ICT 기반의 신성장동력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새 정부는 국정운영 철학과 국가 미래 비전을 먼저 확정하고 그 속에서 데이터·ICT 기반 신성장동력의 의미와 역할을 정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ICT 환경 변화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정책 추진 대상·목표가 단순히 데이터·ICT 산업 육성인지 데이터·ICT와 사회·산업 각 부문의 융합 가속화인지 데이터·ICT를 기반으로 정부 부문을 포함한 우리 국가 사회 전면에 걸친 혁신인지 대국민 공공 서비스 혁신인지 등 세부 국정 목표 내용과 범위에 따라 ICT·데이터 추진체계의 위상과 역할을 정해야 한다.

디지털 대전환을 통한 미래 사회 성공은 차기 정부만의 몫도 아니고 5년 내 마무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데이터·ICT 정책을 긴 호흡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부 조직은 법과 정책의 가장 효과적인 집행 체계여야 한다. 정보화는 특정 부처의 임무가 아니라 사회·경제 전 분야에서 골고루 추진돼야 한다는 명분 아래 각 부처로 업무를 분산시키는 등 ICT 경쟁력을 잃게 만든 지식경제부 모델로 회귀하지 말아야 한다. 데이터·ICT 일반화에 따른 분야별 정책 추진과 미래 핵심 경쟁력으로써 데이터·ICT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이상 맞춤형 추진 체계가 필요하다. 데이터·ICT가 모든 부처 업무의 영역에 혼재되는 것이 정보사회에서 필수로 요구되는 특성이다. 각 부처가 추진하는 관련 정책이 조화롭게 미래 국가 비전 달성에 기여하도록 강력한 조정 권한과 갈등 해결 체계가 필요하다.

과거 조직 개편 성공·실패 사례로부터 교훈을 찾아 현재 맥락에서 실패가 반복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과거 대통령 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나 문재인 정부의 정보통신전략위원회·4차산업혁명위원회가 모두 조정 기능을 부여 받았지만 실질적 조정이 쉽지 않았던 점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데이터·ICT는 자체 경쟁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마인드, 업무 태도나 환경, 사회관계 등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에도 핵심 역할을 한다.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국가 사회 발전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끌 혁신 친화적 추진체계여야 한다. 과거 정보통신부는 ICT 전담 부처로서 다양한 부처와 경쟁·갈등을 통해 ICT 확산·발전을 이끌었다. 정보통신융합법에서 시작된 ICT 규제 혁신 제도는 이른바 '규제 혁신 5법'으로 여러 산업에 확대됐다.

모든 정부 부처가 데이터·ICT 기반 미래사회 구현을 위한 혁신 변화에 동참하게 만드는 '메기효과'를 이끌 '촉진자'로서 전담 부처가 필요한 이유다. 정부 조직 개편 논의에서 데이터·ICT는 독립변수로 고려해야 한다. 데이터·ICT를 담당할 부처가 다른 부처의 개편 결과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개편되는 종속변수면 곤란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안정적인 정부 조직 체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바뀌더라도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 체계에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장기적 관점에서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도출하고 조화될 수 있는 데이터·ICT 추진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결국 조직을 넘어 정부를 이끄는 대통령을 비롯한 구성원의 의지와 실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직만 만들고 강력한 리더십 지원이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미래지향적 작명을 하더라도 구체적 업무와 세부 조직·권한과 같은 디테일이 받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없다.

데이터·ICT 기반 미래 사회는 정부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관 협력과 여·야 협치가 뒷받침돼야 한다. 국가 사회 발전 핵심 기반인 데이터·ICT의 중요성은 코로나19 팬데믹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강조됐다. 세계 모든 국가가 미래 사회로 디지털 대전환을 가속하는 상황에서 거버넌스 개편이 이뤄진다면 그 중심에는 데이터·ICT 거버넌스가 있어야 한다. 새 정부의 데이터·ICT 거버넌스가 미래 대한민국을 성공으로 이끄는 초석이 되길 기대한다.

○최경진 교수는

가천대 법학과 교수이자 인공지능(AI)·빅데이터 정책연구센터장이다. 우리나라 전자상거래·데이터 법 전문 연구자이자 ICT·미디어 분야에서도 연구 업적을 쌓은 법·정책 대표 전문가다. 현재 개인정보보호법학회장, 한국AI법학회·한국과학기술법학회 부회장, 유엔 국제상거래법위원회 정부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kjchoi@gach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