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은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특허권을 보유한 유일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링컨 대통령은 1849년 장애물에 걸린 배를 들어올릴 수 있는 부력장치 기술을 특허로 등록했다. 이 기술은 링컨이 여행 도중 모래톱에 배가 걸리면서 겪은 불편함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해결 방법을 깊게 고민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특허제도는 천재라는 불꽃이 더 잘 타오를 수 있도록 기름을 붓는 것”이라는 말을 남길 정도로 링컨은 특허제도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역사를 돌아보면 특허제도가 발전한 국가가 산업혁명을 주도하면서 경제적 부흥을 누렸다. 1차 산업혁명을 촉발한 증기기관의 발명은 세계 최초로 특허제도를 도입한 영국에서 이뤄졌다. 이후 선도적인 특허심사 체계를 구축해서 특허장려 정책을 시행한 미국이 2~3차 산업혁명의 주도권을 가져갔다.
현재 우리는 '디지털전환' '기술패권'이라는 커다란 시대적 변곡점을 지나고 있다. 인공지능(AI), 5G, 빅데이터와 같은 디지털 신기술이 상품 및 서비스의 생산·유통·소비에 이르는 일련의 경제 행위에 광범위하게 퍼져 가고 있다. 첨단기술이 경제는 물론 안보와 직결되면서 기술을 둘러싼 국가 간 패권 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대변혁의 시대에도 특허를 비롯한 지식재산을 만들고 지키고 활용하는 제도적 장치가 국가 혁신을 끌어내면서 부를 창출하는 핵심 요소로써 그 역할을 계속해 나가리라 생각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지식재산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뤄 왔다. 특허신청 세계 4위, GDP 대비 특허신청 세계 1위, 표준특허 신고건수 세계 1위의 명실상부한 지식재산 5대 강국(IP5)으로 발돋움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커다란 변화는 지식재산 정책에서 또 다른 변화와 한층 더 강화된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디지털전환은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5G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다. 이러한 기술은 서로 융합되면서 대체불가토큰(NFT), 메타버스, 스마트 헬스케어, 자율차와 같은 새로운 사업 영역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AI에 의한 발명 인정 여부, 빅데이터 보호, 메타버스상 상표와 디자인 보호, 의료방법의 특허 허용 여부와 같은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고 있다. 지식재산제도가 새로운 혁신기술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혁신의 아이콘인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지식재산 보호가 없었다면 창의적인 기업들은 사라졌거나 시작도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
그러므로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IP)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공고히 해야 한다. 디지털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지식재산이 기업의 자산가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기술력을 보유한 혁신기업이 지식재산권을 바탕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IP 금융을 활성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우리나라 IP 금융은 약 6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등록된 특허 가운데 담보에 활용되는 비율은 3%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어 미국의 20%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IP 금융의 성패는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의 경제적 가치를 얼마나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냐에 달려 있다. 여러 부처가 협력해서 산재해 있는 거래 및 평가정보를 연계함으로써 정확한 가치평가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또 전문성을 갖춘 감정인이 평가에 참여하고, 공공과 민간에서 수행하는 가치평가의 품질을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다음으로 기술패권시대를 대비한 지식재산의 역할도 더욱 강화돼야 한다. 전 세계 기술정보의 80%는 오직 특허로만 확인할 수 있다. 지금까지 특허청에는 5억개가 넘는 특허와 상표정보가 쌓여 있으며, 매년 300만개가 넘는 새로운 정보가 국내외에서 들어오고 있다. 이를 분석하면 국가별 핵심기술, 진출시장, 핵심인력에 관한 세계 기술 지도를 그려볼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기술경쟁의 전선이 어떻게 형성돼 있는지, 우리가 공격과 방어에 적극 활용해야 하는 전략적 요충지가 어디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민간·공공 영역에서 특허정보가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개방과 이용 폭을 넓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또 기업의 혁신 노력을 정당하게 보상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지식재산 보호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난해 4월 영국 지식재산청(UKIPO)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선진국 대부분이 영업비밀 침해로만 많게는 국내총생산(GDP)의 3%까지 경제적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대 피해액은 전체 연구개발(R&D) 규모의 절반을 넘어서는 6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우리 기술이 경쟁국에 유출되는 것을 막고 핵심 인력을 지켜 내는 것이 더욱 중요해졌다. 지난해 특허청에서 설치된 기술경찰 조직과 인력을 지속적으로 확충하고,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이루어지도록 양형 기준을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바야흐로 지식재산의 시대다. 특허가 1% 늘어나면 GDP가 0.65% 성장한다고 한다. 유럽과 미국 특허청에 따르면 지식재산권을 보유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수익이 20% 많고 직원월급도 20%를 더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허권을 보유한 창업기업은 5년간 고용이 36%, 매출은 51% 증가했다. 기술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디지털전환' '기술패권' 시대에 성장과 생존은 지식재산에 더욱 많이 의존함을 의미한다. 대변혁에 맞서 미래를 그려야 하는 중대한 도전에서 지식재산은 성공 키워드가 될 것이다. 과거 특허에 대한 링컨의 관심이 미국의 특허장려 정책, 나아가 경제적 부흥까지 이어졌듯 우리나라도 범국가적 관심을 바탕으로 지식재산 경쟁력이 국가 성장으로 이어지는 혁신 시스템을 탄탄하게 구축해서 지식재산 강국인 미국·중국·유럽·한국·일본(IP5)을 능가하는 경제강국 G5까지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용래 청장은
기술고시 제26회로 공직에 입문해서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산업정책관, 통상차관보, 산업혁신실장 등을 역임했다. 산업·통상·에너지 등 다방면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식재산 정책의 외연을 넓혔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빅3 핵심 산업 분야에 대한 특허정보 활용 확대, 지식재산 금융 6조원 돌파, 기술수사 전담조직 신설 등 성과를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