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톡]다시 뛰자 '디스플레이'

[ET톡]다시 뛰자 '디스플레이'

“중국 BOE가 삼성전자·애플 스마트폰에 OLED를 공급하려고 혈안이 됐다.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너무 안일한 것 같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국이 17년 만에 한국을 제치고 세계 1위 디스플레이 국가가 되면서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다. 디스플레이는 국가 첨단전략산업의 하나다. TV, 스마트폰, 노트북 등에 주로 쓰이는 디스플레이가 자동차·가전제품 등 생활 곳곳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메타버스 가상현실(VR) 세상도 디스플레이 기술에서 비롯된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만만치 않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에 따르면 디스플레이가 2020년에 배출한 산업 기술 인력은 5만명으로, 2019년 대비 5% 늘었다. 전자나 자동차에 비하면 소폭이지만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첨단전략산업 목록에서 디스플레이가 잘 보이지 않는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이 주목받는 것과 대조된다.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이나 인력양성 사업에서 디스플레이 분야가 홀대받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올해 인력양성 국책과제 신규 사업에 디스플레이 쪽은 단 1개의 사업도 선정되지 못했다.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각각 2개, 1개 신설된 것과 비교됐다.

이런 기류는 액정표시장치(LCD) 산업 패권을 중국에 넘겨준 뒤 심화하는 양상을 띤다. 디스플레이는 '이젠 중국에 안 된다'는 패배 의식마저 느껴진다. LCD는 추월을 허용했지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와 같은 차세대 디스플레이에서 주도권을 놓지 말자던 의지도 갈수록 꺾이고 있다.

중국의 공세는 거세다. 한 수 아래로 본 OLED 시장에서도 휴대폰용 소형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조금씩 잠식하고 있다. 정부의 막강한 보조금 지원과 풍부한 휴대폰 내수를 기반으로 '스케일업'에 나섰다. 국가 첨단산업은 흐름이 중요하다. 반도체 메모리 산업 패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넘어올 때 한 번 탄 흐름은 꺾이지 않았다. LCD 종주국 일본을 한국이 추월한 것도 비슷했다. 세계 정상을 차지해 보자는 산업계의 강렬한 의지와 정부의 뜨거운 관심이 어우러져서 기적을 만들었다. 지금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위기는 그런 파이팅이 사라진 것이다.

메타버스 시대엔 인간과 사물이 디스플레이로 소통한다. 자율주행차, 웨어러블 기기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필요한 정보기기도 무수히 쏟아진다. 반도체와 배터리처럼 디스플레이도 국가경제의 핵심 안보 산업이 될 게 불 보듯 빤하다.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 패권을 내주면 첨단산업 전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 디스플레이 공급난으로 휴대폰이나 자동차 공장이 멈춰 서는 최악의 사태까지 빚어질 수 있다.

우리 디스플레이 산업의 기초체력은 아직 강하다. 17년간 세계 1위를 차지하면서 장비, 부품, 소재 등 후방산업 생태계도 잘 갖춰져 있다. OLED를 기반으로 한 폴더블, 롤러블 등 차세대 기술에서도 여전히 앞서 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다시 세계 1위 탈환을 노려볼 수 있다. 2000년 초·중반에 'LCD 최강국'을 슬로건으로 해서 무섭게 질주하던 잠재력을 끌어내야 한다. 산업계가 앞장서고, 정부도 다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관중의 열광에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가 힘을 얻듯 디스플레이 산업계에 무한한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지웅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