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0일 새 정부가 출범하는 국내에서는 대통령 인수위 분과별로 관련 업계의 이슈와 쟁점을 청취하는 회의가 열리고 있다. 미디어산업계도 방송사업자와 통신사업자를 대변하는 많은 단체와 협회가 참석해서 각자의 입장을 호소한다고 한다. 특히 새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 그동안 풀리지 않았던 규제 완화와 산업 진흥을 위해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한 정책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유료방송 사업자가 각자 강력히 피력한 의견에는 업계 간 이해가 충돌하는 부분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물론 유료방송과 지상파 방송사, 유료방송과 통신, 콘텐츠 전송사업자인 플랫폼과 콘텐츠제공사업자(CP) 등 해묵은 갈등이 산적해 있다.
사업자 간 이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충돌을 조정하거나 피할 수 있는 법령·제도 미비가 그 중심에 있음을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과 인터넷의 발달로 다양한 미디어 서비스가 기존 레거시 서비스와 충돌하거나 레거시 서비스를 와해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담는 법 또는 규제는 부재하다. 이로 인해 사업자 간 규제 불공정, 즉 기울어진 운동장 이슈가 지속 제기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국내 방송법은 이른바 '포지티브' 형태 법률 체계다. 법에서 정의되지 않은 서비스는 출시하지 못하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 규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IPTV 출시 이전에는 IPTV가 기존 방송법에 정의되지 않았고, 출시 이후에 방송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 아래 IPTV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기존 유료방송을 대체할 파괴력이 있는 OTT를 둘러싼 논쟁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이 같은 논쟁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연방통신위원회(FCC)가 빅테크 기업을 포함한 OTT 사업자에 보편적 서비스 기금(USF) 부과 의견을 묻자 OTT 사업자는 그것은 현명하지도 않고 작동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반대했다.
현재 USF는 통신서비스에만 적용되고 인터넷 서비스는 적용받지 않는다. 문제는 통신서비스 가입자가 줄고 있어 USF도 감소세에 있다. 대책 가운데 하나가 빅테크 기업에 USF를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FCC가 USF를 OTT 사업자에 부과하는 것은 FCC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는 주장이다. OTT 사업자는 FCC로부터 허가를 획득해야 하는 사업자도 아닐 뿐만 아니라 시장에서의 퇴출도 자유롭고 사업자 수도 항상 변동할 수 있다.
그동안 OTT 사업자를 유료방송사업자(MVPD)로 정의하려는 등 FCC 규제의 틀 안에 넣으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이 경우 OTT 사업자에도 프로그램 접근이나 전송 등 유료방송에 부과된 규제가 적용된다.
세계 미디어산업 질서를 재편하는 OTT 사업자의 출현은 기존 법과 규제 체계까지도 흔들고 있다. 특히 수직적 체계와 포지티브 법 형태인 방송법으로 미디어산업을 규제하는 국내에서는 그 충격이 더할 수 있다. 방송법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기는 불가능하다고도 볼 수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은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넣으면 부대가 터져서 술도 부대도 버리게 된다는 얘기 후에 나왔음을 잊으면 안 된다. 지금 미디어 세상을 단적으로 아주 잘 표현한 말이다. 새로운 서비스를 낡은 규제의 틀로 다루다 보니 서비스도 규제도 다 쓸모가 없어졌다.
기존 방송법을 개정하는 차원을 넘어 폐기하고 이제는 네거티브 규제 체계 아래 새로운 '새 부대' 틀을 만들어야 한다. 기술 발전으로 새로운 혁신 서비스가 지속 출현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이를 포용할 법률 체계의 조속한 마련과 이에 따른 거버넌스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성기현 연세대 겸임교수 khsung200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