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술혁신이 자본주의를 이끄는 힘이라고 했다. 21세기 정보통신기술을 바탕으로 모든 기기와 사람이 전파로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 발전이 더욱 가속되고 있다. 기업은 생존을 위해 기존 분야를 뛰어넘는 기술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정보통신 분야가 급성장하고 인류 삶의 질 향상에 크게 기여한 것은 다른 어떤 분야에 비해 기술혁신을 잘 준비하고 실천해 왔기 때문이다.
필자가 휴대폰을 처음 접한 것은 25년 전 첫 직장인 KT에서 신입사원 연수 프로그램의 하나로 거리에서 시티폰을 홍보할 때였다. 공중전화 부스 근처에서 발신만 되던 시티폰은 금방 PCS에 밀려났다. PCS는 지금 스마트폰에 비하면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는, 생활의 획기적 변화를 가져왔다. 그 당시 무선통신연구소에서 근무하며 앞으로 휴대폰에 TV가 들어가고 영상통화가 가능할 것이라 얘기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대부분 반신반의하며 그런 날이 금방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나눴다. 평판형 디스플레이는 쉽게 접할 수 없었고, 컴퓨터에 유선 모뎀을 통해 인터넷에 연결하던 시기였다.
대학에서 근무하던 2007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공개했다. 1세대 아이폰 출시를 발표하며 그는 아이팟, 폰, 인터넷통신기기 세 개가 합쳐진 아이폰을 소개했다. 이와 함께 기존 쿼티(QWERTY) 키패드와 스타일러스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강력하고 편리한 손가락을 UI로 사용할 것을 제시했다. 정보통신기술 혁신은 첫 직장에서 얘기하던 휴대기기를 10년 만에 우리 앞에 등장시켰다. 그 후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키아와 모토로라의 휴대폰 사업이 사라진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앞에서 기술한 개인적 경험처럼 지금의 기성세대는 대략 10년 주기로 진화하는 1G부터 현재 5G를 함께함은 물론 앞으로 다가올 6G 시대도 맞을 것이다. 2G에서 수십 kbps이던 데이터 속도가 현재 5G에서 수백 Mbps로 발전한 것만 고려해도 정보통신기술 혁신의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10년마다 세대가 바뀌며 엄청난 기술혁신을 이루어 가는 분야는 정보통신 분야 외에는 거의 없다.
정보통신기술 혁신 시대에 우리나라는 누구보다 잘 대처해 왔으며, 그 결과 정보통신 분야는 우리나라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정보통신 강국을 달성하기 위해 각자의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한 산·학·연·관이 있다. 1980~1990년대 우수한 정보통신 인력을 기르기 위한 국가·대학의 노력과 연구소 및 기업체에서 밤을 새워 가며 연구개발에 매진한 과학기술인들의 노고가 있었다.
세계적 경쟁이 가속화되는 현 시점에서 앞으로 지속적인 정보통신기술 혁신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기술 혁신을 위한 여러 요소 가운데 중요한 것은 미래를 꿈꾸고, 그 꿈을 구체화해서 공유하며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사회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J.F. 케네디 대통령이 1962년 수많은 군중이 모인 텍사스 라이스대에서 “우리는 10년 안에 달에 가기로 결정했다”고 말한 명연설을 다시금 시청해 본다. 그는 인류가 기존에 직면하지 못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갈망뿐만 아니라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국민과 공유했다. 사회는 꿈을 공유하고,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면서 마침내 1969년에 달을 탐사할 수 있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가. 코로나19, 부동산, 취업난, 고령화, 남북문제 등 다양한 사회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도 벅찬 시대다. 이에 정보통신의 미래 준비가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대학에서조차 학생들은 취업난을 뚫기 위한 스펙 쌓기에 꿈을 꾸고 키울 시간이 뺏긴 듯하다. 정보통신에 기반한 인공지능, 메타버스, 자율주행, 생명공학, 우주개발은 앞으로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꾸게 될까. 한번쯤 눈앞의 일을 잠시 옆으로 두고 다가올 미래를 꿈꿀 시간이 필요하다. 그 꿈을 모아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함께 공유할 정부, 꿈꾸는 사람을 키우는 대학, 그 꿈을 실현하는 연구소와 기업, 그 과정에서 실패를 허용하고 적절한 보상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모여 앞으로 세계의 정보통신 혁신을 이끌어 나갈 것을 기대해 본다. 길었던 코로나19라는 터널의 끝을 지나가는 봄이다. 이제 다시 꿈을 키울 시간이다.
구현철 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총무상임이사) hcku@konku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