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e커머스 업계가 지난해 실속 없는 성장을 했다. 외형은 커졌지만 대다수 업체가 여전히 적자 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는 대내외 환경 변화에 맞춰 새판 짜기에 분주하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에 따라 비대면 특수가 줄면서 온라인 쇼핑 성장세도 둔화될 전망이다. 시장 재편 속에 경쟁우위를 점하기 위해 공격 투자를 지속하는 상위업체와 내실 중심 경영을 통해 생존 출구를 모색하는 군소업체로 사업 전략이 크게 나뉘는 양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월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16조5438억원으로 작년 동기대비 11.5% 증가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로 보면 2020년 5월(10%) 이후 1년8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2월에도 15조4314억원으로 13.7% 성장에 그쳤다. 올 초부터 성장 둔화세가 뚜렷해 e커머스 시장의 고성장세도 한풀 꺾이는 추세다.
업계는 e커머스 시장 성장세가 지난해 정점을 찍었다고 보고 있다. 코로나19 첫 해인 2020년에는 19.1%, 2021년에는 21.0% 성장한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올해 들어 증가율이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며 수혜 업종인 온라인 쇼핑은 성장세에 제동이 불가피하다. 온라인으로 구매해온 생필품·식품 수요가 대형마트·편의점 등 오프라인 채널로 옮겨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e커머스 시장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예전과 같은 고성장세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IPO 앞둔 쓱닷컴·컬리·11번가 '성장 위한 투자' 지속
비대면 특수가 끝나는 올해는 e커머스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시장 성장세가 줄면 고객 확보를 위한 서비스 경쟁 강도는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업체 간 경영 전략에도 양극화가 뚜렷하다.
SSG닷컴은 지난해 매출이 15.5% 늘었지만, 영업손실은 469억원에서 1079억원으로 적자폭이 대폭 확대됐다. 광고선전비에만 600억원을 쏟으며 공격적 마케팅을 이어간 영향이다. 덕분에 IPO를 위한 거래액 목표치는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SSG닷컴은 지난해 22% 늘어난 거래액 5조7174억원을 거뒀다. 올 상반기 본격 상장 절차에 돌입한 컬리도 지난해 거래액 2조원을 달성했다. 영업손실은 2177억원으로 전년보다 적자가 2배 가까이 늘었지만 대기업에 맞서 성장성을 입증했다. 내년 증시 입성을 목표로 하는 11번가는 지난해 영업손실 694억원으로 전년(98억원)보다 적자 규모가 크게 늘었다. 매출은 3% 소폭 성장에 그쳤다.
이들 업체는 올해 점유율을 최대한 높이고 성장세를 이어가기 위한 투자를 지속할 방침이다. SSG닷컴은 물류 투자를 강화한다. 영남권 공략을 위해 부산에도 2200억원을 들여 광역물류센터(RDC)를 짓기로 했다. G마켓과 공동 프로모션 등 협업 체계도 강화한다. 신규 멤버십 론칭에 따른 마케팅 비용도 대폭 늘릴 전망이다. G마켓은 신세계그룹 온·오프라인 완성형 에코시스템 기반 구축을 위해 올해 적자도 염두에 두고 있다.
컬리는 배송 솔루션 자회사를 통해 본격 물류사업 확장에 나선다. 콜드체인 시설을 활용해 '3자 배송' 사업 규모를 연내 3배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11번가는 수익 개선을 위해 축소했던 직매입 사업을 다시 강화하고 있다. 핵심 차별화 전략인 아마존 글로벌 스토어도 더욱 고도화한다.
◇수익 제고 나선 쿠팡…군소업체는 '내실 성장' 전환
쿠팡은 지난해 매출이 54% 늘었지만 적자도 3배 커졌다. 마케팅 경쟁과 신사업, 물류 투자를 지속하며 외형이 커졌음에도 밑지는 장사를 했다. 쿠팡 작년 매출은 184억637만달러(약 22조2200억원), 영업손실 14억9396만달러(약 1조8000억원)로 매출과 적자 모두 사상 최대치다.
올해는 기류 변화가 감지된다. 쿠팡은 지난달 콘퍼런스콜에서 처음 흑자 전환 시기를 언급했다. 효율성 제고를 통해 수익 개선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올 1분기 총이익률 2.5%포인트(P) 개선을, EBITDA(상각전영업이익) 기준 손실 규모는 4억달러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가이던스도 제시했다. 그 일환으로 유료 멤버십 요금도 전폭 인상했다.
이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 덕분이다. 지난해 쿠팡 거래액은 전년 대비 71% 증가한 37조8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시장점유율도 5%P 이상 끌어올리며 국내 온라인 유통 시장의 약 20%를 점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발주자와 격차를 더욱 벌리며 수익 개선에 집중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반면에 롯데온과 위메프, 티몬 등은 생존을 위한 차별화 시도와 함께 수익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위메프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37.6% 감소한 338억원이다. e커머스 출혈 경쟁 속에서도 적자를 줄이는데 성공했다. 대신 매출이 36.4% 감소했다. 위메프는 비용 출혈이 큰 직매입 사업을 대폭 줄이는 등 선택과 집중에 나섰다.
롯데온과 티몬은 적자가 늘었을 뿐 아니라 매출마저 줄었다. 롯데온은 지난해 적자가 610억원 늘었고 매출은 21.5% 줄었다. 티몬의 경우 지난해 매출이 14.7% 줄어든 1290억원, 영업손실은 20.4% 늘어난 76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들 업체는 고강도 경쟁 대신 내실 성장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일부는 직매입 기반 새벽배송 사업에서 철수했다. 후발주자 입장에선 출혈을 감내하기보다는 출구 전략을 쓰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e커머스 시장은 상위 사업자의 과점 구조가 고착화되고 신선식품, 패션 등 특정 분야에 두각을 나타낸 업체가 나머지를 차지하는 구도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올해 성장세가 둔화되고 대형 사업자 중심의 시장 재편이 빨라지면서 출구전략을 모색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