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경제학에서 생산의 3요소는 토지, 노동, 자본이다. 하지만 주요 생산요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해 왔다. 4차 산업사회로 접어든 지금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 가운데 하나는 데이터다. 데이터를 분석해서 필요한 지식을 추출하고, 이를 활용함으로써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 경제라는 용어도 생겼다. 데이터 경제는 데이터 활용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 개발 등 가치 창출로 이어짐으로써 산업발전에 촉매 역할을 하는 경제를 말한다. 세계 주요국들은 데이터 경제로의 전환을 촉진하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4차 산업사회에서 국가 데이터 전략은 단순한 정보화 전략을 넘어 가장 중요한 산업 및 경제 정책이 되고 있다.
생산요소로서의 데이터는 기존 토지, 노동, 자본 등과 달리 생산에 투입되더라도 줄어들거나 훼손되지 않는다는 특성이 있다. 중요한 자원임에도 얼마든지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다른 데이터와 함께 활용될 경우 그 가치는 급상승하게 된다. 이에 따라 주요 국가의 핵심이 되는 데이터 전략은 '개방과 공유'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 데이터를 정부 기관뿐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하는 것은 기본이고 민간 부문의 데이터가 생산·거래·유통돼 공유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민간 부문 데이터는 양이나 다양성 면에서 활용 가치가 공공 데이터를 훨씬 상회한다. 그러나 민간 부문 데이터는 공공 데이터와 달리 개방과 공유가 어렵다. 데이터가 기업의 핵심 자산이자 경쟁력의 원천인 상황에서 웬만한 동인이 제공되지 않고서는 공유가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과적으로 국가 데이터 전략의 핵심은 공공 데이터 개방이 아니라 어떻게 민간 부문 데이터의 거래와 유통을 촉진시키고 공유를 활성화함으로써 산업, 더 나아가 경제 전체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2019년부터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을 국가 데이터 전략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해 왔다. 금융, 통신, 환경, 문화 등 16개 분야에서 민간 데이터를 중심으로 하는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데이터 생태계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에 지원해서 선정되면 플랫폼 구축을 주관하는 업체와 데이터를 공유하는 업체는 재정을 지원받아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데이터를 유상 또는 무상으로 제공하는 구조다.
그러나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리 큰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는 듯하다. 가장 큰 불만 가운데 하나는 데이터 플랫폼에 쓸 만한 데이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터 플랫폼에 쓸 만한 데이터가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해당 기업이 데이터를 공유할 인센티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이 정책이 데이터 공급자를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 참여자로 제한하고 있다는 점이다.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에 선정되지 못한 기업들은 자사가 생산한 데이터를 거래시킬 수 없는 구조여서 사업 목적과 다르게 빅데이터 플랫폼 사업에서의 '데이터 생태계'는 시장 참여자가 제한된 생태계가 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가 데이터 전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궁극적으로 민간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개방형 생태계 조성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재정지원 사업을 통해 특정 기업으로 하여금 데이터를 공유하게 하는 정책보다는 다양한 데이터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 조성에 집중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어떨지 제안해 본다. 거래를 촉진할 표준을 제정하고 이를 고도화한다거나 가치평가를 통해 구매자와 판매자의 정보 격차를 줄이는 노력 등은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신경식 이화여대 경영대학 교수·한국빅데이터학회장 ksshin@ew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