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은 국내 이동통신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전파 인력 양성이 다급했던 시절이었다. 전파 인력 양성에 물꼬를 트기 위해 정부는 1992년부터 전국 6개 대학에 전파공학과를 신설, 전파 인력 양성을 위한 재정 지원을 시작했다. 당시 필자는 그러한 산업적 수요나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1992년에 신설된 한 대학의 전파공학과에 입학했으며, 현재 전파 관련 분야에 종사하며 연구 수행 및 학생 양성에 기여하고 있다.
20여 년간 전파 분야에 종사하면서 과거 정부의 정책과 그로 인한 영향이 산업에 반영되는 결과를 관찰할 수 있었다. 매번 시기적절하고 다가올 미래를 고려해 정책이 실행됐다. 또 당시 배출된 전파 분야 인력들이 첨단 전파 산업 수출과 관련된 산업 현장 곳곳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다.
2020년을 넘어 4차 산업혁명이 포스트 코로나와 맞물리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뉴노멀 환경의 충격이 과학기술과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런 기술혁명은 2000년대 이동통신 발달로 인한 전파 분야의 수요 못지않게 첨단 전파기술 개발 및 관련 전문 인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첨단 전파기술이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산업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5G로 대표되는 이동통신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최신 통신 기술인 5G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클라우드,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산업 및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여기에는 많은 전파 인력이 종사하고 있다. 곧 다가올 6G 이동통신에 대한 준비 및 상용화가 본격화된다면 훨씬 더 많은 전파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첨단 전파기술은 군수산업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국내 방산업체들은 진보된 전파기술을 바탕으로 국산 유도무기체계의 지속적인 성과를 거둬 왔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및 아랍에미리트(UAE)와 2조원 이상 규모의 유도무기 체계 수출 및 계약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와 더불어 관련 분야 산업체들은 전파 인력을 채용하기 위해 전방위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첨단 전파기술의 중요성은 우주에서도 대두되고 있다. 통신을 활용한 응용 분야가 우주로 확대됨에 따라 우주 저궤도 큐브셀, 저궤도 SAR 위성, 정지궤도 통신위성, 정지궤도 신호정보위성 등 위성과 관련된 전파 분야가 향후 전파 산업을 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는 우주 전파와 관련된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해 인력 양성이 시급한 실정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각종 첨단 전파기술을 활용해 의료기술 수준을 향상시키고 있다. 이미 고주파 절제술 및 자기공명영상(MRI)과 같은 전파기술은 의료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관련 장비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전파 인력이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무선전력 전송을 통한 체내 삽입형 의료기기 개발 및 체내 산소요구량에 따른 자기공명 신호 변화를 추적하는 fMRI 기술 등이 주목받게 되면서 기술 수준 향상을 위한 전문 인력이 요구되고 있다.
이처럼 첨단 전파기술 및 인력은 수출과 관련된 각종 산업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각국은 능동적이고 선도적으로 첨단 전파기술 개발 및 인력 양성에 사활을 건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전파 분야의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학교에서는 산업 현장으로부터 현재보다 훨씬 많은 전문 전파 인력의 공급을 요청받고 있다. 그러나 인력 양성 및 배출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10년 이내에 전파 전문 인력 수급난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기술 및 인력의 해외 의존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1990년대에 전파 분야의 국가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을 경주하던 정부 정책과 같이 새 정부도 국가적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현재의 인력 양성 수준을 감안할 때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전파 인력의 품귀 및 국가기술 경쟁력이 저하될 것은 불 보듯 뻔한 현실이다. 1990년대의 선제적이고 집중적인 전파 인력 양성 수준의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정부와 산·학·연에 요구된다. 이는 향후 20년까지도 첨단 전파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추호성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상임이사 hschoo@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