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칼럼]방송콘텐츠 진흥 전담부서 마련해야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
홍원식 동덕여대 교양대학 교수

새 정부 출범에 앞서 한참 진행돼 온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에 대한 논의가 다소 잠잠해졌다. 여·야 모두 대선 공약으로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과 미디어 혁신기구 신설을 제시했기 때문에 다른 어느 때보다도 기대가 많은 상황이다. 혹시 또 미디어에 대한 정치적 논박만 하다가 거버넌스 개편이 흐지부지 끝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을 두고 다양한 갑론을박이 있겠지만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미디어 산업의 국제 경쟁력이 '콘텐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오징어게임'으로 확인됐듯 K-콘텐츠의 글로벌 열풍은 이미 우리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일례로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오징어게임'이 공개된 이후 국내 과자류 수출액은 2002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으며, 이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류 콘텐츠와 과자 수출이 무슨 큰 관계가 있냐고 궁금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 콘텐츠 수출이 다른 산업 영역에 발생시키는 경제적 파급효과는 이미 다양하게 확인되고 있다.

한류 콘텐츠 수출액이 100달러 증가할 때 소비재 수출액이 248달러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나아가 국가 브랜드 이미지 제고와 국제 외교 영역에서 '소프트파워' 상승에 K-콘텐츠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은 이미 식상한 얘기라고 평가될 정도다.

글로벌 시장에서 날로 위상이 올라가는 K-콘텐츠임에도 국내 미디어 정책에서 콘텐츠 산업에 대한 진흥은 언제나 후순위 관심사로 밀려나 있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과 플랫폼 산업에 대한 진흥 논리와 네트워크 시장 규모에 밀려 정작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는 콘텐츠 사업 주체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국내 유료방송 콘텐츠 제작과 공급을 책임지고 있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는 정책적으로 소외되고 있다. PP는 유료방송에서 드라마, 영화, 스포츠, 취미, 패션 등 다양한 장르의 방송 채널을 제공하는 사업자다. 실제로 PP가 국내 방송 산업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위상은 상당하다. 2020년 정부 통계 기준 PP업계 종사자 수는 1만7249명으로 전체 방송사업 종사자 가운데 46.5%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수출액 규모도 2019년 기준 지상파 방송사를 넘어섰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 조직에서 PP산업을 전담하는 부서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내 비정규 조직 형태로 있던 '방송채널사업정책팀'마저 2020년 'OTT활성화지원팀'으로 전환, PP 사업자가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만날 정책담당자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정책적 무관심은 새로운 플랫폼 사업자에 대해 정부가 그동안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를 살펴보면 단적으로 비교된다. 케이블TV, IPTV,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까지 시대에 따른 뉴미디어 플랫폼이 등장할 때마다 정부는 적극적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산업 진흥정책을 수립하는 등 관할권 확보를 위해 노력해 왔다. OTT의 경우 관계부처가 관할권을 놓고 경쟁하는 모습이다.

본격적으로 미디어 거버넌스를 논의할 기회가 열린 만큼 이제는 미디어 산업 핵심 경쟁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OTT 사업자에 '오리지널 콘텐츠'라는 무기가 없다면 시장에서 성공하기 어렵다. 다른 플랫폼 사업자와 차별화되는 경쟁력과 성장동력은 '콘텐츠 파워'라는 점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3월 한국방송학회 주최 세미나에서 다수의 미디어 전문가들은 콘텐츠 산업 진흥의 중요성에 대해 입을 모았다. 콘텐츠 산업의 중요성을 고려해 '실' 단위의 콘텐츠 조직이 필요하며, 정부 조직 내 PP 사업자 등을 관장하는 별도의 부서가 있어야 한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새 시대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방향은 결국 '콘텐츠 산업 진흥'이 중심이 돼야 한다. 미디어 정책 기구를 분할하기로 했던 과거 결정이 지난 10년 동안 정책 비효율을 만들어 냈다.

현재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논의는 앞으로 우리 미디어 산업의 수십년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순간의 의미가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하는 지금이 우리나라가 글로벌 방송영상콘텐츠 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한 발판을 확고히 할 수 있는 적기라고 생각한다. 그 첫걸음으로 새 정부는 방송영상콘텐츠 산업 진흥을 전담하는 전담부서를 마련하길 희망한다.

홍원식 동덕여대 교수 wraiso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