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치열해지고 있는 미-중 갈등 상황에서 우리의 대응 방안은 커다란 숙제다.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한·미 우호관계 증진이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취임식에 미국은 '세컨드 젠틀맨'인 더글러스 엠호프를 축하사절로 보내는가 하면 대통령 취임식 열흘 뒤인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확정되는 등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더욱 크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친중 정책을 표방하기는 했으나 우리는 오랫동안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 이슈는 미국, 경제 이슈는 중국을 중시) 정책을 추진해 왔다. 이는 미국이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중국에 대한 견제가 없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우리나라의 안미경중 정책 수정도 불가피해졌다.
최근 미국은 국제 사회에서 중국으로부터 패권적 지위가 위협받게 되자 문재인 정부의 친중 정책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미국이 대중국 반도체 공급을 규제하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중국 점유율도 떨어졌다.
중국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우리나라가 중국과의 통상에서 매년 수백억 달러의 흑자를 내면서 한미동맹이 강화되는 것에 불만을 표명하기도 했다. 어쨌든 우리나라는 미국과 중국 양측으로부터 양자택일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미-중 갈등에 대해 하영선 서울대 명예교수는 세계질서 재편의 특징을 언급했다. 당분간 세계 군사 무대에서는 미국이 계속해서 우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중국과의 직접적인 군사 충돌이 일어날 위험성은 낮지만 중국 주변 지역에서 양국이 핵심 국가이익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간접적 군사적 긴장감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요지다.
미국과 중국의 견제는 군사 무대를 넘어선다. 경제·기술·규범 무대에서 기존 질서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과 갈등을 벌이면서 더 많은 입주국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가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점에서 양국간 협력과 공생의 길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음을 시사한다. 미국의 석학 존 미어샤이머(John J. Mearsheimer) 시카고대 교수도 광대한 시장과 막강한 정부의 지원으로 경제적 영향력을 쌓아 가고 있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조만간 외교·군사적 영향력으로 미국을 제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미-중 갈등의 종국이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그가 군사적 충돌 공산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은 곳은 단연 대만 해협이다.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충돌의 불꽃은 두 세력이 맞닿는 지정학적 위치가 크게 작용한다. 이어 지정학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은 우리나라도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일 공산이 크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미국의 동맹구조도 변화할 것으로 예견했다. 미소 냉전 시대 유럽에 나토(NATO)를 만들어서 소련을 견제했던 것과 달리 유럽과 아시아의 지리적 차이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일본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국 전략이 된 인도·태평양 정책이나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협력체인 '커드'(QUAD)는 사실 모두 일본이 처음 제시한 아이디어들이다. 특히 최근 일본은 미국에 대중국 견제 정책 틀 제시를 넘어 미국의 대만 방어 전략에 직접 참여하면서 미-중 갈등으로 높아진 일본의 지정학적 가치를 군사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세계질서에서 우리가 생존하려면 미국과의 첨단기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북핵 문제와 우리나라 경제의 중국 의존도를 고려할 때 우리가 중국 견제의 최전선에 나서기 어렵다면 미국과 중국이 집중하고 있는 첨단기술 분야를 외교·국방 전략과 결합하는 등 한국의 존재감을 키워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법치주의·인권 등 핵심 가치를 기준으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과의 외교에 나설 계획임을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밝혔다. 즉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서의 전방위적 협력의 지평을 확대하면서 경제안보, 인도·태평양 지역 및 글로벌 협력을 위한 한·미 공조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대중 정책에 대해서는 경제, 공급망, 보건, 기후변화, 환경, 문화교류 등 분야 중심의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새 정부는 한미동맹 강화·발전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미-중 패권경쟁이 첨예화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추후 중국과의 마찰이 발생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특히 새 정부가 중시하는 경제안보 분야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도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법치주의, 인권 등 가치에 따른 외교를 추구하면 중국과 부딪치는 부분은 '규범에 기반을 둔 질서를 지킬 것이냐, 안 지킬 것이냐'로 귀결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결국 우리나라는 국제 공급망(Global Supply Chain) 재편 등의 문제를 놓고 미·중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미·중 강대국 사이에 낀 우리로서는 국력, 지리, 문화, 지역환경, 균형, 등거리 외교 등 다양하고 창의적인 외교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자유주의 규범 기반의 국제질서가 약해지고 미·중 간 세력 경쟁이 심화되는 국제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유사한 정황에 놓인 중간국 및 중견국과 연대하는 네트워크 외교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
다자주의와 규범 기반 국제질서를 주창하는 독일·영국·프랑스·캐나다·호주 등과 연대해 자유무역·다자주의를 보호함과 동시에 강대국의 세력 경쟁과 지정학적 충돌 사이에 낀 동유럽, 중유럽, 북유럽, 중동지역, 인도, 동남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등 미-중 경쟁 공동 대응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류길호 입법정책연구회 사무총장 rkh615@naver.com
<필자 소개>
류길호 입법정책연구회 사무총장은 경북 의성 출신이다. 직장생활을 하다 2007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7대 대선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 선거대책위원회 과학기술자문위원, 18대 대선에선 박근혜 전 대통령 선대위 부대변인을 지냈다.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활동하면서 IPTV법 제정에 한 역할을 하고, 보좌진협의회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와 함께 입법정책연구회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표> 윤석열 정부 美·中 관계 관련 외교안보 국정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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