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오랜 골칫거리인 러시아 여성밴드 로커가 음식 배달원으로 위장하는 등 첩보작전 끝에 무사히 러시아를 빠져나갔다.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 5인 여성 록밴드 ‘푸시 라이엇’의 리더 마리아 알료히나(33)가 가택연금 중 감시원의 눈을 피해 리투아니아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푸시 라이엇은 반 푸틴 운동을 펼쳐온 그룹으로, 지난 10년간 러시아 권력층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들은 지난 2012년 2월 처음 저항의 목소리를 냈다. 푸틴 대통령의 3기 집권에 반대하기 위해 크렘린 인근 러시아 정교회 성당 안에서 무허가로 시위성 공연을 진행한 것. 당시 알료히나를 비롯해 멤버 3명은 종교시설에서 난동을 피웠다는 이유로 기소돼 2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시위성 공연을 한 이들을 ‘훌리건’으로 표현하며 징역형을 선고한 러시아의 인권 탄압적 태도에 국제 사회에서는 거센 비판이 일었고, 이일로 무명 밴드였던 푸시 라이엇은 국제적으로 유명해졌다.
멤버들은 감형이나 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저항을 계속했다. 러시아의 범죄와 처벌을 비판하는 독립언론 ‘미디어조나’를 설립하고, 회고록 집필과 해외 공연을 통해 러시아의 만행을 알리는 데 힘썼다. 이로 인해 알료히나는 지난해 여름 이후에만 6번씩 15일 단기형을 선고받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당국의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자택에 연금된 알료히나는 모스크바가 아닌 유형지로 보내질 위기에 처했고 결국 국외 탈출을 결심했다.
알료히나는 감시원을 따돌리기 위해 러시아의 음식배달원 복장으로 위장했다. 휴대전화는 위치 추적을 피하기 위한 미끼로 아파트에 놓고 나왔다.
이어 친구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그는 벨라루스 국경에 도달했고, 일주일만에야 겨우 리투아니아에 입국했다. 그는 러시아로부터 여권까지 압류당해 지인들이 마련해준 유럽연합(EU)의 신분증을 사용해야 했다.
현재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한 원룸에 머물고 있는 그는 반 푸틴 인사들의 비참한 생활을 알리기 위해 NYT와 인터뷰에 응했다고 전했다.
알료히나는 “러시아는 더 이상 존재할 권리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언젠가는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지만, 자유를 느낀다면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고 NYT에 말했다.
이 외에도 친러 세력은 우크라이나와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항하는 이들을 향해 강도높은 괴롭힘을 이어가고 있다.
‘푸틴의 정적’으로 불리는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현재 수감 중이지만 자신의 변호사와 동료들을 통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올리는 등 푸틴에 저항하고 있다.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나발니에 따르면 친러 세력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부차에서 나발니와 성(姓)이 같은 남성을 살해하고, 그 옆에 보란듯이 여권을 던져두었다. 나발니 본인도 2020년 8월 독일에서 독극물 노비촉을 이용한 독살 위협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크렘린궁은 해당 암살 시도 혐의를 부인한 상태다.
또 다른 야권 인사 블라디미르 카라-무르자는 지난달 11일 모스크바 자택 인근에서 체포됐다. 푸틴의 언론 탄압과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했다는 혐의다. 카라-무르자는 지난 2015년 암살된 러시아의 대표적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의 측근이었다. 그 자신도 2017년 미확인 물질에 중독돼 혼수상태에 빠진 뒤 회복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