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경기를 보면 화려한 개인기를 자랑하는 공격수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효율적 활용과 상대에 특화된 전술이 더욱더 중요하다. 강한 상대와 싸워서 이기려면 더욱 그렇다. 현대인 대부분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전자장치를 손에 들고 다닐 정도로 초고속 전자 기술이 크게 발전했다. 성능도 좋고, 크기도 작아야 하는 까다로운 요구 조건의 최신 제품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한두 개의 고성능 부품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주변의 부품들, 부품 간 연결, 회로 동작 시 발생하는 전자파, 그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까지 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시스템 전체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전자파 기반의 복합적 설계기술인 EMC(Electromagnetic Compatibility) 기술이 필요하다.
EMC 기술의 기본은 전자기학이다. 전자기학은 전자기장의 분포와 변화를 다루는 전자공학 분야의 기초 학문이다. 복잡한 계산을 동반해 많은 전자공학도가 어려워하는 과목이기도 하다. 필자도 대학 시절 전자기학을 가장 어렵게 느꼈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이 분야를 다시 보게 됐고, 30년이 지난 지금은 전자기학 기반의 응용 기술인 EMC 분야를 연구해서 가르치고 있다. 그 계기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1GB D램이 개발되던 1990년대 중·후반에 약 100명의 전자공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하던 한 젊은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앞으로 컴퓨터 기술은 급속도로 발전해 현재보다 1000배 빠른 컴퓨터가 여는 디지털 세상이 될 것입니다. 미래의 컴퓨터 개발에는 전자파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특히 EMC 기술이 산업에 크게 기여할 것입니다.”
EMC는 어떤 기술인가. 전자파적합성이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으로 옮길 수 있다. 전자장치 내에 발생하는 전자기 현상이 조화를 이뤄 최고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고, 다른 장치나 생체에도 간섭이 적게 하는 기술이다. 디지털 시스템에서의 EMC 기술을 예를 들어본다. 컴퓨터 연산 속도가 높아지면서 빠르게 변하는 고속 신호는 많은 전자파를 발생하게 된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3시간 이내에 가야 한다면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서 안전한 속도로 주행할 수 있다. 그런데 요구 시간이 1시간이라면? 출발과 동시에 급가속과 끼어들기를 반복하며 달려도 제시간에 도착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회로에서 동작하는 신호들이 사용자 요구에 따라 빠르게 동작한 덕분에 우리는 고화질 영화도 볼 수 있고, 3차원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극단적인 고성능을 추구하다 보면 주변의 다른 장치에 방해가 되는 전자파를 발생시켜서 간섭하거나 경우에 따라 사고가 나서 정보가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다. EMC 기술은 신호를 빠르게 전달하면서도 사고와 방해가 없도록 하는 설계 기술이다. 이를 위해 전자파의 발생 원인을 찾고 최적화해야 한다. 도로에서 고속 차로와 저속 차로를 분리하고 도로를 정비해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것처럼 전자파 문제를 체계적으로 예측하고 해결하는 기술이 EMC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슈퍼컴퓨터에만 이런 기술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작은 스마트폰에도 많이 적용돼 있고, 이런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애플, 인텔 등 제조 기업뿐만 아니라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고성능 데이터센터를 둔 구글·마이크로소프트·페이스북 등 수많은 기업에서 EMC가 활용되고 관련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 전기자동차가 각광받으며 현대차, 테슬라 등에서도 안전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동차 EMC 분야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국방 기술이나 위성 개발에서도 EMC는 필요하다.
모든 전자제품에 방대하게 응용되고 있는 EMC는 전자부품의 모든 요소를 전자파 관점에서 조율하고 종합적인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나아가 전자기기가 인간의 삶에서도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 EMC 기술의 매력이다.
안승영 카이스트 조천식모빌리티대학원 교수·한국전자파학회 상임이사 sahn@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