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18)대중소기업 상생의 해부학

[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18)대중소기업 상생의 해부학

중국 한(漢)나라 고조 유방의 아들 혜제 시절이다. 승상 소하가 죽자 그 뒤를 지방 관리로 있던 조참이 이었다. 조참은 지방 후임자에게 감옥과 시장을 엄히 다스리라고 당부하고 떠나왔지만 정작 전국을 다스리게 된 자신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혜제가 한탄하자 폐하께선 돌아가신 고조만 못하고 자신은 죽은 소하만 못하니 소하가 만든 법을 잘 지키면 될 뿐이라고 했다. 그는 나라의 규모에 따라 할 일이 다름을 알았고, 진(秦)나라가 가혹한 법을 집행하고 토목공사와 폭정으로 망한 일도 잊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정권이 대기업 중심 선단을 육성하고 정치·경제를 통합해 산업을 발전시켰다. 역량이 부족한 민간에 맡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로·항만 등 산업인프라 구축과 중화학공업 등 수출형 산업에 중점을 두었다. 그런 점에서 공산주의식 계획경제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성공했다. 가난을 벗어나고픈 국민 열망이 컸고, 정권을 신뢰하고 따랐기에 가능했다.

민주화를 통해 출범한 정부는 대기업을 규제하며 중소기업 역량을 기르는 데 중점을 뒀다. 그 과정에서 플랫폼, 게임 기업 등이 두각을 드러냈다. 그와 함께 소프트웨어 등 특정 사업에 대한 대기업 참여 제한, 갑질 방지 등 공정거래법 강화를 통해 중소기업을 보호했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뿌리 식물처럼 엮여 있는 산업 구조상 중소기업의 독자 성장은 쉽지 않았다. 믿었던 플랫폼 기업은 내수 시장에 남아 다양한 사업 분야로 확장하면서 정부의 집중 견제를 받기에 이르렀다.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는 법률 리스크를 줄이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업무의 중소기업 외주, 산업안전에 위험을 가져오는 업무의 중소기업 외주를 촉진했다. 게다가 제휴업체 등 중소기업이 이익을 내려고 투자를 소홀히 함으로써 저임금, 안전사고의 구조적 악순환이 일어나기도 했다. 법으로 막아지지도 않았다.

자율적인 시장 기능을 중시하는 정부가 집권하면서 대기업 규제를 완화해 주는 등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추진하게 했다. 동반성장 정책이 그것이다. 그러나 경영 실적보다 정·관계 네트워크가 좋은 중소기업만 두각을 보이는 문제가 있었다. 품질이 나쁜 중소기업 제품을 대기업이 떠안으면서 상품·서비스의 품질 저하가 불가피했다. 대금 지급을 둘러싸고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대·중소기업의 상생은 어떻게 해야 할까. 대기업의 최종 상품·서비스에 필요한 중간재를 중소기업으로부터 공급받는 경우 그 품질이 낮다면 동반 쇠락할 위험이 있다. 중소기업은 핵심 기술 중심으로 대기업과 협력해서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대기업이 제값에 사 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대기업이 글로벌하게 추진하는 산업, 시장, 연구개발 정보를 중소기업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성공사례를 만들겠다고 무조건적 상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 윈윈(Win-Win) 협력 모델과 시범사례를 만들겠다며 맞지 않는 단추를 억지로 끼우듯 해서도 안 된다. 동반성장지수 등 좋은 등급을 받기 위해 단기 실적에 집착하는 것도 문제다. 대·중소기업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려고 정치를 끌어들여서도 안 된다.

대·중소기업의 상생은 법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의 ESG경영에 의존할 것도 아니다. 서로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지 않으면 시장을 왜곡하고 기업의 체력만 약화시킨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협력 생태계의 범위와 한계를 찾아야 한다. 대·중소기업도 법적으로 인격을 부여받은 법인이다. 법인 사이에도 자연인과 마찬가지로 예의와 소통이 중요하다. 한나라 승상 조참이 시장을 믿고 법 집행을 자제하며 민간 활력을 기다려 준 역사를 잊지 말자.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