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70〉특허전쟁, 변호사-변리사 협업만이 살길이다

[ET대학포럼]〈70〉특허전쟁, 변호사-변리사 협업만이 살길이다

미-중 기술패권전쟁으로 혁신적 원천기술을 집중 연구해서 특허권을 선취하는 전략이 중요해짐에 따라 전략기술 확보와 보안을 위한 특허전쟁이 거세지고 있다. 기업은 특허권을 무기로 선봉에 서 있고, 변리사와 변호사는 양 축이 되어 중요한 참모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특허변호사가 경쟁력을 가지는 것은 특허명세서 작성 등 발명을 제대로 된 특허권으로 만들어 주는 능력(prosecution ability)을 갖추고, 그 위에 특허소송 능력(litigation ability)까지 함께 갖췄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요원한 현실이다.

현행법상 특허 출원·등록 및 그에 관한 심판은 오직 '변리사'만 대리 가능하다. 심판원의 결정에 대한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소송 역시 변리사가 지난 1998년 특허법원 설립 이래 단독으로 대리해 왔다. 민법과 민사소송법이 변리사 시험의 필수과목으로 채택된 지도 30년이 다 되어 간다. 기술·특허에 대한 최고 전문가는 '변리사'이며, 소송수행 능력도 검증됐다. 하지만 '특허침해소송'에서는 변리사의 대리와 참여가 제한되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지식재산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허 분쟁을 겪고 있는 기업 10곳 가운데 9곳이 중소·벤처기업이다.

또, 지난 해 언론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특허분쟁을 겪고 있는 중소·벤처기업 약 80%가 최대 애로사항으로 '변리사를 특허침해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할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지난 해 11월에 개최된 국회 공청회는 왜 이러한 조사결과가 나온것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기업은 특허를 출원할 때부터 선행기술을 조사하고 특허명세서를 직접 작성해서 해당 특허를 가장 잘 아는 변리사가 있음에도 특허침해소송에서는 변리사를 대리인으로 활용할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변호사를 물색해서 기술·특허를 설명하는 수고를 더해야 된다. 그나마 변호사가 기술·특허 내용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 변론 기일을 다시 잡아야 하고, 소송은 한없이 길어진다. 로스쿨이 도입돼 이공계 출신 변호사가 배출되기 시작했지만 변호사 합격률 제한으로 로스쿨의 특성화 교육이 무너짐에 따라 교육을 통한 특허전문 변호사 양성은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로스쿨의 지식재산권법 교수들도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상황인데 기업의 심정은 오죽할까.

요즘 암 치료는 내과·외과간 협진이 기본이다. 외과의사는 수술에 능하지만 항암제 등 약물치료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고, 내과의사는 반대로 수술 전문성이 떨어지다보니 자연스럽게 협진 체계가 형성된 것이다.

특허침해소송에서도 기술·특허 전문가 '변리사'와 법률 전문가 '변호사'가 공조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시대적 요구일 뿐만 아니라 국민을 위한 사법 서비스제도 개선의 필수 사항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12일 '변호사-변리사 공동대리'를 허용하는 변리사법 개정안이 국회 산자중기위를 통과했다. 지난 20여년간 과학기술계와 산업계의 오랜 숙원임에도 변호사 단체는 여전히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변호사에 비해 법률 전문성이 부족한 변리사가 소송대리를 할 경우 국민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다. 정작 국민의 눈에는 직역 이기주의적 주장으로 비칠 뿐이다. 변리사 단독 대리가 아니고 변호사는 필수 선임하되 법률소비자 필요 시 변리사도 추가 선임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달라는 타협적 수준인데 정녕 누구를 위한 반대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변호사 단체는 법원이 '전문심리위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므로 변호사가 기술전문가와 협업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문심리위원'은 '재판부가 요청한 구체적 사안'에 한정해 진술할 수 있을 뿐 여타의 재판 절차에 참여할 수 없다. 마치 내과의사가 병원 밖에서 외과의사에게 항암제 종류를 설명하고, 외과의사가 설명을 듣고 항암제를 골라서 투여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환자에게 가장 좋은 길은 내과의사도 직접 환자를 진료해서 환자 상태 변화에 따라 가장 적합한 항암제의 종류와 투여용량·방법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법률 소비자인 중소·벤처기업이 변리사를 '전문심리위원'이 아닌 '대리인'으로 활용하기를 원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논의만 하며 20여년의 세월을 허송할 동안 일본, 중국, 유럽연합(EU), 영국 등 주요국은 기업을 위해 변리사의 특허침해소송 대리권을 인정했다. 다시 국회의 시간이다. 뜸을 너무 오래 들이면 가마솥에 다 탄 재만 남을 뿐이다. 이제 제발 밥을 푸자.

김원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지식재산학회 명예회장

oneofkim@inh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