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는 '유니콘 기업의 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에서 800개사 이상의 새로운 유니콘 기업이 쏟아졌다. 2013년에 유니콘 개념을 처음 언급한 미국의 카우보이벤처스의 에일린 리는 1년에 3~4개의 유니콘이 생겨난다고 했다. 기업가치가 천문학적 스타트업이어서 희귀하고 신기해 전설 속 동물인 유니콘이라 명명했다. 그런데 이제 1년에 700개 이상이 만들어지다 보니 더 이상 신기하지도 희소성도 없는 상황이 됐다. 유니콘 기업들은 이제 전설이 아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룩말 수준이 됐다.
유니콘 기업은 더 이상 '뉴노멀'(New normal)이 아닌 '노멀'이 됐다. 물론 지난해 유니콘 기업이 폭증한 건 코로나19에 대한 반작용으로 비대면 산업이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면서 혜택을 본 스타트업이 유니콘으로 변모한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특히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핀테크, 배달, 유통, 정신건강, 노화방지 등 분야에서 다수 탄생했다.
유니콘이 더 이상 전설이 아닌 현실 상황에서 미래의 유니콘을 꿈꾸며 국내를 떠나 해외에 보금자리를 트는 스타트업이 늘고 있다.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이른바 '플립'(Flip)을 추진한다. 스타트업이 플립을 하는 주된 이유는 해외 투자 유치, 우수 인재 확보, 시장 확대, 해외 주식시장 상장 등 목적에서다. 국내의 과도한 규제를 피해 해외로 법인을 이전하는 사례도 있다. 결론적으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사업하는 것이 여러 측면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타트업의 플립에 대한 관심은 쿠팡이 지난해 뉴욕증권거래소에서 화려하게 상장하면서 급격히 높아졌다. 기업용 채팅 메신저 '센드버드'와 국내 1세대 화장품 구독서비스업체 '미미박스'는 2014년에 본사를 미국으로 이전했다. 기업 협업툴 소프트웨어(SW)를 제공하는 '알로'도 2019년에 본사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옮겼다. 최근에는 비건 화장품 브랜드 '멜릭서', 기업용 협업 SW '스윗테크놀로지스', 인공지능(AI) 교육서비스 기업 '뤼이드', AI 기반 경기 분석 스타트업 '비프로컴퍼니', 데이터 관리 스타트업 '쿼리파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사운더블헬스' 등 상당히 많은 스타트업이 미국이나 영국으로 플립을 했거나 진행하고 있다. 디지털 광고서비스 기업 뉴코애드원드는 아랍에미리트(UAE)행을 결정했다.
플립도 뉴노멀에서 노멀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기업용 소프트웨어(SaaS) 분야에서 플립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국내보다 해외에서 기술 가치와 시장성을 더 크게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센드버드, 스윗, 알로 모두 현재 북미 기업간거래(B2B) 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SaaS 업체다.
K-뷰티 스타트업 '미미박스'는 미국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로부터 초기 투자를 받고 난 뒤 본사를 미국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미미박스는 이후 여러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22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뤼이드는 미국 이전으로 기업가치가 급속히 확대돼 더 큰 수익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플립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주식 교환이 복잡한 데다 세금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기업가치가 높게 평가된 후 시도하는 플립은 해외법인 주식과 교환하는 과정에서 창업자에게 많은 양도소득세가 발생할 수 있다. 여러 위험 요인을 낮추기 위해 초기 단계에서 플립을 진행하는 것이 요즘 추세다. 언어·문화 차이도 엄청난 장벽으로 작용한다. 또 막상 글로벌에서 원하는 성과가 미미할 경우 한국으로 돌아오는 역플립을 하기도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이노는 미국으로 플립했다가 한국으로 역플립했다.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면 더 큰 규모로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글로벌화 과정에서 플립은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수한 기업의 플립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가능한 한 정부가 유인책을 써서 최대한 막아야 한다' '해외 진출을 장려해야 한다' 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립한 기업을 국적을 바꾼 배신자로 보는 프레임도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아직 없는 듯하다. 이른 시간 내에 플립에 대한 종합 대응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글로벌 경제 여건이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새 정부는 올해를 성장의 골든타임으로 인식하고 국가 미래를 이끌 스타트업 르네상스를 일으켜야 한다.
국내에만 있는 규제 때문에 해외에서 뛰어야 하는 우수한 우리 기업들이 뒤처질 수 있다. 윤석열 정부는 삐뚤어진 국수주의 프레임을 깨고 규제를 없애는 등 플랫폼 스타트업이 글로벌에서 마음 놓고 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
최근에 개봉한 '파친코'라는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과 번영을 이룬 한인 이민 가족의 꿈과 희망을 기록한 대하드라마이다. 스타트업계에서 다양한 이유로 이러한 '디아스포라'(diaspora)가 활발하게 일고 있다. '파친코' 주인공인 '선자'와 같이 글로벌에서 성공한 스타트업들이 우리나라의 노멀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hsryou60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