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년 한국 총연구개발비'는 약 93조원으로 세계 5위 수준이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비중은 4.8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2위 수준이다. 또 2022년도 국가 R&D 예산은 2021년도보다 8.8% 증가한 29조8000억원 규모다. 뉴딜, 빅3(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미래차),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감염병 등에 국가 R&D 예산이 투자되고 있다. 국가 R&D 예산은 2017년도 19조5000억원에서 5년 뒤인 2022년도에 약 10조3000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한국의 높은 R&D 투자 수준에도 정작 연구 성과가 기업 실적이나 경제성장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일명 '코리아 패러독스'가 발생하고 있다. 코리아 패러독스는 높은 수준의 과학지식과 연구 기반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를 경제발전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유러피안 패러독스'를 빗대어 생겨난 신조어로, 경고성 단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침체에도 한국의 R&D 투자와 지식재산권(IP) 출원은 증가하고 있으나 특허 등 IP 양적 증가에도 특허를 기술이전, 사업화 등에 활용해서 경제적 수익을 창출하는 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로 신기술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여느 때보다 신속한 기술혁신이 필요하며, 기술 획득 수단으로 자체 기술개발뿐만 아니라 기술거래의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기업은 자체 기술개발에 얽매이지 않고 기술거래,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외부 기술을 도입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지난 10여년 동안 국내 기술 거래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으나 기술 보호 등 규제 위주 정책은 효과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나 기술거래 활성화를 위한 개선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 보호는 무형의 기술정보를 시장에서 거래가 가능하게 하며, 기술 창출과 활용을 촉진하는 기능도 있어 2000년대 이후로 기술보호 정책이 강조돼 왔다. 다만 기술거래는 대·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임에도 기술 공급자 위주의 기술보호 정책은 자칫 기술거래 환경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기술거래 활성화를 통해 국내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존 규제 정책에서 벗어나 건전한 기술거래 생태계를 조성할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특허 출원, R&D 성공률 등 양적 성과보다 우수특허, 삼극특허 등 질적 성과를 장려해서 기술 활용을 높이는 한편 기술이전과 기술사업화를 유도해야 한다.
또 정부 중심 시장 형성 및 운영으로 위축됐던 민간 시장을 확대하고 역량 있는 민간 기술거래 기관을 육성해서 민간-공공 협력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독일 '슈타인바이스 재단'과 같은 기업 컨설팅 기반의 민간 기술거래 기관을 설립하고 육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기술거래 활성화를 위해 기술거래 기관을 효율화하고 다양한 기술거래 방식을 지원하는 등 기술거래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술거래 기관 간 DB 연계와 부처별 기술거래 기관 통폐합 등을 추진하며 M&A, 투자연계형 기술거래, 경상실시료(후불방식) 등 기업이 선호하는 다양한 기술거래 방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이를 통해 기술 공급자는 기술의 보호를 받으면서 정당한 대가를 받고 기술 수요기업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필요한 기술을 확보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기술거래가 활성화되고 건전한 기술거래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세계 주요국이 기술혁신 및 신기술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기술거래 활성화는 한국의 높은 R&D 투자가 국내 기업 경쟁력과 기업 실적으로 이어지게 하며, 결과적으로 코리안 패러독스에서 벗어나 경제성장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규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ks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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