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TP 리뷰 1]양자정보통신, 연구실 벗어나 시장에서 기지개 시작

양자우월을 최초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는 구글의 양자컴퓨터 시카모어. 사진=구글
양자우월을 최초 달성한 것으로 평가되는 구글의 양자컴퓨터 시카모어. 사진=구글

양자(quantum)는 물리량 최소 단위를 의미한다. 디지털 정보단위인 비트(bit)가 0 또는 1의 값을 가지는 데 비해 양자 정보단위인 큐비트(qubit)는 0과 1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과 큐비트가 서로 연동되는 '얽힘' 속성을 가진다. 중첩과 얽힘이 완벽하게 구현되면 n개 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는 2의 n승에 해당하는 연산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어 컴퓨팅의 신기원이 열리는 것이다. 아울러 불가복사성과 양자 측정 비가역성은 도청이 사실상 불가능한 통신망을 가능케 하는 등 양자정보통신은 파급력을 가늠하기 어려운 변혁적 기술로 인식된다. 그러나 잠재력 원천인 중첩과 얽힘이 약간의 교란에도 무너지는 불안정성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가 운명적으로 수반된다.

◇양자암호통신 상용서비스, 우리 기업이 선도

양자기술 상용화는 양자암호 분야에서 먼저 실현되고 있는데, 통신 분야는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다. 양자암호통신은 제삼자가 암호키 탈취를 시도할 경우 이를 감지하고 데이터를 변형해 해킹할 수 없도록 만드는 양자암호키분배(QKD) 방식과 해독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학적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양자내성암호(PQC) 방식으로 구분되는데, SK텔레콤과 KT는 QKD를, LG유플러스는 PQC를 채택하고 있다.

2020년 SK텔레콤은 하드웨어(HW) 방식 양자난수생성기(QRNG)를 장착한 단말기인 갤럭시A퀀텀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 데 이어 지난 4월에는 사전 제휴를 맺지 않은 타사 앱과 외장메모리 데이터에도 QRNG 암호화가 적용되는 갤럭시퀀텀3를 출시했다. 또 버라이즌이 미국 최초로 워싱턴DC와 버지니아 간 광통신망 상용서비스 구현에 활용한 양자키분배기를 상용 공급했고(2020년), QKD와 PQC 방식의 융합 활용 기술이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표준으로 사전 채택(2022.5월)되는 등 양자암호통신 상용화를 선도하고 있다. LG유플러스는 지난 4월 세계 최초로 PQC 전용회선 서비스를 출시했다. 격자 기반 방식 양자내성암호 기술이 적용된 광전송장비(ROADM)를 활용하는데, 암호키 전송을 위한 별도 선로 구성이나 네트워크의 물리적 거리를 늘리기 위한 중계노드가 필요 없고 낮은 CPU와 저전력 등 사물인터넷(IoT) 환경에도 적합한 것으로 알려진다. KT는 상반기에 QKD방식의 양자암호 전용회선 신규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이며 세계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전송거리 100㎞ 이상의 양자암호 중계기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구글과 IBM, 치열한 양자컴퓨터 선두 경쟁…양자우월성 입증은 구글이 먼저

불안정한 양자상태로 인한 오류에도 정상 작동하는 양자컴퓨터는 2030년경에야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기술 진보는 빠르게 진행 중이다. 2019년 10월 구글은 슈퍼컴퓨터로 1만년 걸리는 계산을 54개 큐비트로 구성된 양자컴퓨터(시카모어)로 200초 만에 성공한 사실을 네이처에 발표, 세계 최초로 양자우월성(Quantum Supremacy)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캐나다의 디웨이브시스템스가 2048큐비트 양자컴퓨터를 2017년 출시했음에도 얽힘에 한계(7개)가 있어 충분한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극히 제한된 영역에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 데이터센터, 양자 HW 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퀀텀 인공지능(AI) 캠퍼스' 개소로 전열을 강화한 구글은 2021년 말에는 물질이 외부에서 에너지를 받지 않고도 주기적으로 구조를 바꾸는 특수한 상태인 '시간 결정'을 시카모어가 0.1초간 구현한 연구성과를 발표하기도 했으며, 현재 논리적 큐비트로 양자 계산을 하는 트랜지스터를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170여개 회원사로 구성된 글로벌 협력체인 '퀀텀 네트워크'를 이끄는 IBM은 2021년 127큐비트 프로세서(IBM 이글)를 개발한 데 이어 연내 433큐비트 프로세서(IBM 오스프리), 2023년에는 1000큐비트 이상 범용 프로세서(IBM 콘도르)를 내놓을 계획이다. 특히 모듈식 아키텍처와 서버리스 접근법 등으로 양자컴퓨터의 확장성과 개발효율을 높이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는 IBM은 2025년에는 4000큐비트 이상의 양자프로세스로 선두주자 입지를 굳힌다는 전략이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 전통적 정보통신기술(ICT) 강자들도 본격적인 경쟁대열에 합류한 가운데 최근 공매도 보고서로 시장 주목을 받기도 했던 아이온큐는 전하를 띤 원자인 이온을 전자기장을 통해 잡아두는 이온트랩 방식과 이테르븀 대신에 쉽게 구할 수 있는 바륨 이온을 활용하는 차별화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미-중 필두로 국운을 건 패권경쟁 전개

일찍이 양자기술 중요성에 주목해 온 미국은 양자정보과학 연방비전(2009) 발표와 국가양자이니셔티브법(2018) 제정에 이어 백악관 직속 국가양자이니셔티브위원회 설치를 결정(5월 4일)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양자기술 분야에서 미국과 2강으로 평가되는 중국은 제14차 5개년계획(2021)에서 양자컴퓨팅을 7대 핵심기술로 지정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칭화대 등 주요 대학에 양자 학위과정 신설(2021)과 세계 최대 규모의 양자정보과학연구소 건립 등 인재 양성과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양자기업컨소시엄(2021년 4월)을 출범하고 2028년까지 10억유로 규모 퀀텀플래그십 프로젝트를, 일본은 양자미래사회비전(2022년 4월)을 발표하고 2000억엔 규모 광양자컴퓨터 프로젝트를 지원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양자기술연구개발투자전략(2021)을 통해 2024년까지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 구현을 목표로 설정하고, 전년 대비 2배 이상 확대된 699억원을 2022년 예산으로 책정하는 등 정책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여전히 자금이나 인재 모두 경쟁국과 비교해 절대 열세지만 비교우위 요소와 글로벌 협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양자산업생태계를 역동화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도전환경을 구현할 수 있다면 양자정보통신에서도 퀀텀 점프가 가능하리라 믿는다.

글 : 이효은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