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21)소비사회 변화와 인공지능 탄생

[이상직 변호사의 DX문화살롱](21)소비사회 변화와 인공지능 탄생

인공지능(AI)은 어떻게 우리 곁에 왔을까,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발전이라고만 보면 뭔가 부족하다. 산업화시대에는 품질 좋은 상품을 많이 생산하는 것이 중요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의 미덕이었다. 풍족하게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성장페달을 밟은 기업은 멈출 수 없었다.

생산을 계속해서 재고가 많아졌고, 기업의 인력도 남아돌았다. 재고를 없애려고 허위·과장 광고, 판매강제 및 해고가 고객과 직원을 괴롭히고 공정거래법 등 법령에 따라 처벌됐다. 정보화시대에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해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정확히 찾아냈고, 고객이 원하는 시간·장소·방법으로 공급했다. 고객조차 모르는 수요를 분석, 맞춤형 상품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그것도 언젠간 끝이 날 것이다.

기업의 관심은 더 이상 사지 않는 고객에게 무엇을 어떻게 더 팔 수 있을지로 옮겨 갔다. 부족한 것 없는 상류계층에는 하류계층과 다르다는 점을 소비를 통해 보이라고 부추긴다. 좋은 학군에 있는 고급주택, 고가의 그림 등 예술작품, 초고가 스포츠카 같은 것 등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라고 한다. 하류계층엔 상류계층을 쫓아야 한다며 추격형 소비를 부추긴다. 명품 가방 하나라도 사라고 한다. 백화점 주변에 줄을 선 채 밤을 새우는 젊은이를 자주 보는 이유다. TV를 뛰쳐나온 광고는 인터넷, 모바일, SNS를 드나들며 고객의 마음을 파고든다. 과거 TV 같은 전자제품은 기능 중심으로 광고했다. 화면이 선명하고 전기 소비가 적게 든다고 했다. 지금은 유명 예술가의 손길을 거친 디자인이라고 한다. 가격은 아무나 살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지만 가진다면 상류층이 되는 듯 광고를 한다. 바야흐로 소비사회가 도래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시뮐라시옹과 시뮐라크르라는 개념을 이용해 소비의 새로운 지평에 관해 말한다. 워차우스키 감독은 영화 '매트릭스'에 참여하는 배우에게 그의 책을 읽고 촬영에 임하라고 했다. 시뮐라시옹은 현실에 실제 있는 사물을 그대로 베낀 이미지 또는 기호가 현실을 대체하는 현상이다. 그런데 실제의 사물이 없어지면 베낀 이미지가 더 진짜 같은 역할을 한다. 이것이 시뮐라크르다. 시뮐라시옹의 결과로 현실에서는 없거나 없어진 사물이지만 가상세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디즈니 만화 주인공 미키마우스는 혐오스러운 쥐를 모델로 했지만 더 이상 쥐가 아니다.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아이들은 쥐를 무서워해도 미키마우스는 무서워하지 않는다. 미키마우스가 등장하는 영화와 그 캐릭터를 새긴 액세서리, 장난감, 디즈니랜드에 돈을 쓴다. SNS 또는 모바일 메신저를 이용할 때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이모티콘을 쓴다. '좋아요' '싫어요' '슬퍼요' 등 감정을 표현한 기호로, 실제 공간에는 없는 것이다. 온라인게임 아이템도 마찬가지다. 온라인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려면 칼, 창, 방패나 다양한 마법의 아이템이 필요하다. 게임을 통해 획득하려면 많이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돈을 내고 구입한다. 실제 공간에 없는 것이지만 온라인게임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메타버스에서 아바타에게 입힐 옷과 액세서리도 산다. 고가에 팔리는 디지털자산의 NFT도 다르지 않다. 현실에서는 쓸 수 없는 것이다. 모방된 이미지, 꾸며진 이미지가 세상을 다스린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대부분은 옷을 직접 만들지 못하고, 집을 직접 짓지 못하고, 농사를 직접 짓지 못한다. 그것을 살 돈을 충분히 가질 수도 없다. 그 간극에서 인간의 원초적 불안이 나온다. 실제 존재하는 것, 원본과의 연관성을 끊고 원본 가치보다 큰 것이 늘고 있다. 이것들은 현실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태어난 세상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민간 역량이 커져야 한다. 인터넷을 이용하는 세계의 많은 시민들이 참여해서 가꾸었기 때문에 오늘날 인터넷이 있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소비도 다시 보자. 인공지능 상품이 사람의 생명·신체·안전을 침해하는지,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