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에서 나가는 사람이 없다면 새로운 사람을 초대하긴 어렵겠죠?” 드라마 '러브, 데스+로봇'의 에피소드 '팝 스쿼드' 이야기다. 인간은 의료·과학 기술 발달로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면 굳이 새로운 구성원을 받아들일 필요가 없다. 출산을 금하고 처벌한다. 이들은 인간일까 아닐까. 그리스 신화로 가보자. 아테네인은 영웅 테세우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배를 보존했다. 세월이 흐르면 배가 낡아진다. 부품을 갈며 고치니 나중엔 배를 이루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배는 테세우스의 배일까 아니면 전혀 다른 배일까.
의료·과학 기술의 도움을 받는다면 우리도 영생을 누릴지 모른다. 장애가 생긴 신체·장기를 기계,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으로 교체하며 삶을 유지할 수 있다. 언젠간 우리 몸의 모든 것이 교체될 것이다. 인간은 언제 인간이 아니게 될까.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본질인 인간성을 상실하면 인간이 아니게 된다. 인간성은 무엇일까. 흉악한 범죄자라 해도 인간성을 부인당하진 않는다. 인간은 책상, 의자 같은 물건과 달리 용도가 없다. 존재 그 자체로 인간성이 인정된다. 아무리 쓸모 없어도 인간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의료·과학 기술 발달로 늙지 않는 삶을 유지해도 인간이 AI나 다른 무언가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테세우스의 배처럼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이 기계, SW, AI로 완전히 대체돼도 그럴까.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탱크를 막아서거나 낯선 사람을 구하려고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몸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 윌리엄 D. 해밀턴은 위험 속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행위는 동족 개체에 들어 있는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인간은 오랜 세월 세균, 바이러스 등 다른 생명체와 부딪치며 그들의 유전자를 몸속에 받아들이고 생존과 번식의 역사를 써 왔다. 인간의 유전자는 블록체인의 노드처럼 모든 인간의 몸 속에 들어 있다. 인간의 신체·장기가 기계·SW·AI로 대체돼도 인간의 설계도인 유전자와 유전정보가 최후의 보루로 우리 몸 속에 남아 있다면 인간으로 봐야 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어려운 이유다.
의료·과학 기술 발달이 가져온 수명 연장은 다른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인간은 동물형 생명체로, 성장이 끝나면 노화에 들어간다. 성장은 길게 잡아도 20년을 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추면 늙기 시작한다. 성장과 노화에 소요되는 기간을 같다고 보면 원래 수명은 평균 40세 정도일 것이다. 임꺽정이나 항우·장비 같은 장수들은 육식을 즐기고 폭음·폭식을 했다. 그 부작용은 서서히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대략 40세 정도까진 아무 문제없이 거뜬히 살았다. 의료·과학 기술, AI 발전은 인간이 성장을 계속하게 하긴 어려워도 예방·치료와 신체·장기 교체를 통해 노화를 충분히 늦출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정신이 늘어난 수명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 평균수명에 더해 30~40년을 더 살고 있지만 대략 40세를 넘어가면 성인병, 암 등으로 자주 아프거나 이유를 찾기 어려운 외로움·고통·슬픔에 시달린다. 직장에서 은퇴하는 시기도 늦춰지면서 사회생활의 정신적 고통까지 더해지고, 세대 갈등도 커진다. 진화 관점에서도 고령화는 좋지 않다. 평균 수명이 짧아야 종의 세대교체가 빠르고, 변이가 빨리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오래 살 수 있음을 죄악시해선 안 된다. 고령화는 축복이다. 건강한 정신에 기반을 두어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다. 정신건강, 심리 상담을 위해 '멘털케어'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 인간이 스스로의 가치를 존중하고 기계·AI·자연과 개체 초월적 공존 생태계를 만드는 것만이 인간과 AI의 경계선에서 우리를 지킬 수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