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배터리 재활용은 이미 세계적 이슈로 자리 잡고 있다. 배터리 제작에 필요한 자원 낭비와 환경오염을 더욱 줄일 수 있어 재활용 산업 자체가 '친환경'이다. 특히 요즘 글로벌 화두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기조에도 어울린다.
재활용을 통해 리튬, 코발트, 니켈, 망간, 흑연, 알루미늄, 구리 등 핵심 소재를 재추출해서 사용하면 배터리가 폐기될 때 발생할 수 있는 유독물질에 대한 관리도 그만큼 체계적일 수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차전지 제조에 필요한 핵심 원재료와 소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폐배터리 재활용에 나서야 원재료 수급 상황 등 대외 변수에 대한 충격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이차전지는 제조에 필요한 핵심 소재 가운데 하나라도 수급에 어려움이 있으면 생산이 어렵다. 이 때문에 이차전지 소재업체는 스스로 가격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엄청난 규모로 커지고 있다. 2024년이면 전 세계 연간 전기차 판매량이 1000만대를 넘을 것이라고 한다. 2025년이면 이전에 보급된 전기차의 배터리 교체 시기가 시작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시장은 2025년 3조원에서 2030년 12조원, 2040년이면 87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전기차 및 배터리 제조사들도 앞다퉈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 진출 및 투자를 서두르고 있다. 각국에서도 폐배터리의 높은 활용 가치를 최대한 활용하고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하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2030년부터 배터리 수입 시 반드시 일정 함량 이상의 재활용 배터리를 포함해야 한다고 발표했고, 중국 배터리 제조사인 CATL은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에 최대 320억위안(약 6조557억원)을 투자할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제조사별로 다양한 종류의 이차전지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배터리 분류를 포함해 표준화가 필수다.
특히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로 구성된 이차전지 핵심 소재 가운데 재료비의 40%를 차지하는 양극재의 주 소재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이다. 새 배터리 양극 소재는 99.9% 순도이지만 사용함에 따라 순도가 떨어진다. 폐배터리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이 순도 함량을 정확히 확인하기 위한 표준물질 개발과 순도 측정을 표준화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폐배터리 재활용을 위한 국내표준은 물론 국제표준도 제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제표준을 선점하게 되면 그만큼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및 한국전지산업협회, 제조사, 대학 및 연구기관들과 함께 최근 '전기차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 표준화 협의회'를 발족하고 재활용 단계별 국가 및 국제표준 개발에 나섰다.
국표원과 KTR는 표준화 협의회를 통해 폐배터리 재활용 관련 글로벌 동향과 규제정보를 공유하고, 사용 후 배터리 추출 원료에 대한 표준물질 및 국가표준 개발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특히 재활용 원료 추적성 검증, 사용량 산정 방법 등 사용 후 배터리의 재활용 단계별 표준안 개발 등을 검토해 나가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이차전지 분야에서 중국과 함께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전기자동차용 배터리 세계시장 10위권 안에 3개 국내 업체가 랭크돼 있다. 하지만 소재 분야 경쟁력은 뒤처지고 있다. 배터리 4대 소재로 일컬어지는 양극재, 전해액, 분리막, 음극재 등 시장에서 우리나라 시장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그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우리가 주도할 수 있다면 원재료와 소재 분야에서의 어려움을 넘기고 미래 에너지 주요 분야에서 새로운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는 자원적 한계를 인적·기술적 역량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제 글로벌 이차전지 재활용 산업 선점을 위해 민·관이, 산·학·연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권오정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 원장 kwonohj@ktr.or.kr
-
김영호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