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자기 얼굴이나 모습을 찍는 사람이 많다. 2013년에는 '셀카'(셀프카메라)를 뜻하는 영어 단어 셀피(selfie)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올랐다. 셀카 열풍은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 셀카에 집착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자기 자신을 남겨서 간직하고픈 자연스러운 본능일까. 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굳건하게 버티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걸까.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는 많은 여인의 사랑을 받았으나 누구의 마음도 받지 않았다. 마음을 빼앗긴 요정 에코는 식음을 전폐하고 슬퍼하다가 죽어 목소리만 남았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나르키소스에게 자기 자신과의 사랑에 빠지는 형벌을 내렸다. 현대인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자기 자신과의 사랑에 빠진 걸까. 셀카 열풍은 단순한 자기애를 넘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몸은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과 마주한다. 특히 시각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다. 셀카를 찍어서 자기만족을 얻을 뿐만 아니라 SNS에 올려서 타인의 호응을 유도한다. 타인의 관심을 얻지 못하면 짜증이 나거나 우울해진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사진을 보정하면 실제 모습과 달라지기도 한다. 타인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와 결합해 나타나는 징후다. 단순한 자기애를 넘어 타인의 관심을 갈구하는 행위이고, 디지털이 일상인 삶에서 나오는 소외와 불안이 원인일 수 있다. 잘 보정된 셀카 사진은 타인의 질투, 고립, 불안을 가져오기도 하고 스토킹 대상이 될 수 있다.
화가들은 자신이 그린 그림 속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화가 얀 반에이크는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에서 배경에 보이는 작은 거울 속에 화가 자신의 모습을 넣었다가 사람이 알아보지 못할까 봐 글씨까지 새겨 넣었다. 화가 벨라스케스는 합스부르크 스페인 왕가의 궁정을 그린 작품 '시녀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자기 모습을 그림 왼쪽에 배치했다. 공포영화 감독 앨프리드 히치콕은 자기 영화에 자주 단역으로 출연했다. 백설공주에 나오는 마녀 왕비는 매일 거울에 대고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쁜지 물었다. 요즘이면 스마트폰에 물었으리라. 자화상이나 셀카는 과거엔 단순한 자기애의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세상과 떨어지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자 생존 수단이다. 매년 셀카를 찍다가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빈번하다. 빙하, 낭떠러지, 고층 건물에 올라가서 셀카를 찍다가 추락하여 죽는 사고가 그것이다. 이탈리아 박물관에서는 200년도 더 된 조각상에 올라가서 셀카를 찍다가 조각상의 발가락을 부러뜨렸다.
현대인은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해 목숨 건 투쟁을 하고 있다. 셀카는 현대인을 위협하는 소외, 고독, 불안,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위안을 줄 수 있다. 타인과의 직접 소통이 주는 두려움을 스마트폰 카메라를 이용해 간접 소통으로 해소할 수 있고, 타인의 관심에 따라 수익을 낼 수도 있다. 어떤 댓글이 붙는지에 따라 일희일비하기도 한다. 잘 보이기 위해 얼굴도 고칠 수 있다. 단순 보정을 넘어 성형이 유행하고 있다. SNS 기업은 '좋아요' 등 감정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만들어 현대인의 고독을 이용하는 기민함을 보이고 있다.
셀카 열풍은 디지털전환 시대에 우리가 진정 남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고민을 더하게 한다. 미국정신의학회는 셀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디지털 시대의 신종 정신질환으로 분류했다. 셀카에 정신질환을 바로 대입하는 것은 지나치다. 그런 논리라면 현대인이라면 누구든 어떤 형태로든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현대인의 소외, 불안, 두려움이 공동체의 불공정한 시스템에서 원인을 찾으면 광기가 되고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셀카 열풍 등 디지털 시대 문화 현상을 연구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