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을 달걀 노른자에, 경기도를 흰자에 빗댄 드라마가 화제를 모았다. 경기도가 마치 서울이라는 노른자를 감싸고 있는 흰자 같다는 표현이었다. 서울 직장을 오가느라 하루 4시간이 소요된다고 한탄하는 드라마 속 인물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부산에 위치한 중소기업 10곳 중 7곳 이상이 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최근 역내 중소기업 15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다. 그런데 같은 조사에서 청년 구직자 10명 중 8명은 부산에서 취업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지역 청년들은 고향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데 기업은 인력난을 겪고 있으니 구인과 구직 간 부조화가 심각하다 하겠다.
조사에 응답한 청년들은 고향을 떠나는 이유로 '임금'을 꼽았다. 구직자 희망 임금과 기업의 실질 임금 간 차이 때문인데, 그 격차는 400만원 가량이라고 한다. 실제로 부산의 20~30대 인구는 10년 전보다 18만6000명 줄었으며 이 중 60%는 취업과 관련해 고향을 떠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사는 지역에 좋은 일자리가 있으면 청년들이 굳이 서울이나 타지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 된다.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기업이다. 그중에서도 중소·중견기업이 전체 일자리 수의 약 83%를 담당하고 있다. 지역 중소·중견기업이 지역의 젊은 인재들에게 매력적인 일터가 되도록 지원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기적 임금 보전 정책 대신 기업 스스로 혁신할 수 있는 동기와 기회를 제공해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돕는 지속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마침 새 정부가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표방하고 나섰다. 민간이 혁신 주체이고, 정부는 간섭하지 않고 뒷받침만 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국이 추격자로서 선진국을 따라갈 때는 정부가 앞에서 끌어야 할 필요성이 있었지만 선도자로서 세상에 없는 것을 창조해야 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민간이 혁신을 주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혁신에는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신산업이 싹트는 것을 가로막는 각종 규제 속에서 중소·중견기업이 과감한 도전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 과학기술 분야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민간 주도 지역 혁신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특히 100여개 출연연 지역조직을 지역 기업, 대학, 지자체와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해 중앙 정부 중심 정책 한계점을 보완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의 경우 지자체 및 지역 산업계 요청에 따라 설치된 지역조직을 해당 지역 전략·특화산업과 연계된 기술 혁신 거점으로 운영 중이다. 지역 성장에 필요한 현안을 발굴·기획하고 발굴된 현안 해결을 위해 지역 내 혁신 주체들과 다양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해 왔다. 목적은 지역 주도 R&BD 생태계 조성을 통한 지역 산업 성장이다.
일례로 '안산시 강소기업 육성 지원사업'을 들 수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100억원이 투입된 이 사업은 안산시가 역내 중소·중견기업을 히든챔피언으로 육성하기 위해 자체 예산만으로 시동을 걸었다. 생기원은 이 사업을 발굴·기획하고 역내 산학연관 협력체를 구성해 지자체 주도 기업지원 사업의 움을 틔울 수 있었다. 또 광주에서는 전기차 기업들의 협동조합인 '빛그린전기차협동조합' 설립을 지원, 대기업 중심 수직적 협력관계를 수평적 협력 네트워크로 전환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력과 기술력이다. 출연연 지역조직을 활용해 지역 산업계 기술 혁신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매력적인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지역 인재 유출을 막으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노른자도 좋지만 양질의 단백질은 달걀 흰자에 들어 있다.
이낙규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원장 nklee@kitech.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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