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1일 우리나라 국토의 남쪽 끝 전남 고흥군 외나로도에 위치한 나로우주센터를 방문했다. 필자가 우주인 후보로 선발되었을 당시 항공우주연구원장이던 백홍열 원장을 비롯해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추억에 젖는 것도 잠시, 누리호가 300톤급 엔진에서 불을 뿜으며 발사대를 떠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로부터 14분쯤 후 고도 700㎞ 상공에 도달한 누리호는 마침내 인공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누리호 성공 발사를 위해 300여 곳의 국내 기업에서 500여 명의 엔지니어가 참여했다. 누리호의 국산화율은 94%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37만개에 달하는 로켓 부품 가운데 기성품인 센서 등과 일부 소형 부품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부품을 국내 기술로 직접 제작했다고 한다. 우주 개발은 국가 단위에서도 기술 이전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는 까닭에 후발주자가 소위 '벤치마킹'을 통해 빠르게 외국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가 어려운 분야다. 이 때문에 누리호에 사용된 거의 모든 부품을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해야 했고, 이는 역설적으로 우리나라의 제조업 역량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뽐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실제로 누리호에는 '제조' 측면에서 다양한 핵심적인 기술이 적용됐다. 먼저 액체 엔진 4기를 묶어 하나의 엔진처럼 활용하는 클러스터링 기술이 1단 엔진에 적용됐다. 이 방식으로 엔진이 작동하려면 수 백개의 밸브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도록 엔진을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1차 발사 때 문제를 일으킨 산화제 탱크 제작에도 고도의 기술이 요구됐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산화제 탱크 두께를 2㎜ 수준으로 줄이면서 비행 과정에서 가해지는 내외부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내구성 확보가 핵심이었다.
특히 여기에는 우리나라 조선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용접 기술이 주효한 역할을 했다. 발사체 탱크를 구성하는 원재료인 알루미늄은 열에 뒤틀리는 성질 때문에 용접하기가 아주 까다롭다. 우리나라 용접 기술이 바다를 넘어 우주에서도 통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로켓뿐만 아니라 새롭게 개발한 로켓 발사대 제작 과정에도 숙련된 국산 제조 기술이 뒷받침됐다. 항공우주연구원에 따르면 발사대 핵심은 로켓이 최대 추력 300톤에 도달할 때까지 고정했다가 푸는 '지상 고정 장치'를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민간 기업 엔지니어를 포함한 60여 명의 개발진이 협업했다. 개발 과정에서 협력업체가 도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고 한다. 이 외에 비행 중인 누리호의 실시간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위치파악시스템 개발은 국내 중소기업이 담당했다. 우주에서 안테나가 위성 신호를 제대로 받는지 확인하려면 극저온 환경 등을 설정해서 시험을 진행해야 한다.
우주 산업은 기계, 전자, 조선 등 다양한 제조업 분야의 기술이 망라되는 '제조업 향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후발주자이지만 세계에서 7번째로 1톤 이상의 실용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었던 건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누리호의 성공은 대한민국 우주 개발 역사의 서막이다. 당장 오는 8월엔 국산 달궤도선 '다누리'가 미국 스페이스X사의 팰컨9 로켓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다. 정부는 오는 2030년엔 누리호의 성능을 개선해 국산 달 착륙선을 발사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기도 했다. 특히 우주 개발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해외에서는 이미 스페이스X, 버진갤럭틱, 블루오리진 등과 같은 민간 업체들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국내에도 대기업뿐만 아니라 일부 스타트업들이 우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2017년에 설립된 스타트업 '이노스페이스'는 올해 말 브라질에서 자체 기술로 개발한 '한빛-TLV'라는 발사체의 시험발사를 앞두고 있다. 길이가 누리호의 3분의 1 수준인 한빛-TLV는 10㎏급 나노위성 4~5개를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카이스트 학생들이 창업한 '페리지에어로스페이스'도 3월 초소형 발사체 시험발사를 성공시킨 데 이어 탑재체를 지상 500㎞ 궤도에 진입시키는 것을 목표로 개발을 잇고 있다. 올해 초에는 유인 우주여행을 목표로 하는 스타트업도 탄생했다. 정부가 누리호 3차 발사 때부터 민간에 로켓 제작 기술을 이관한다고 밝힌 만큼 향후 국내 제조업과 우주 산업의 동반 성장이 기대된다.
'Per Ardua Ad Astra.'(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해) 영국의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이 이끄는 '버진 갤럭틱'이 준궤도 우주비행에 성공하며 상업 우주여행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 2004년이다. 이후 추가 시험비행에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버진 갤럭틱은 비로소 내년에 우주여행 관광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처음 시험비행 성공 후 우주 관광을 실현하기까지 무려 20년 가까운 세월이 소요된 것이다. 우주 개발은 로켓을 성공적으로 쏘아 올렸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역경을 헤치고 별을 향해' 막 나아가기 시작한 대한민국 우주 산업이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한민국 제조업이 그랬듯 전 세계인을 놀라게 할 또 하나의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길 기대한다.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kosan@capa.ai)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는 … 제조업체 매칭플랫폼 카파(CAPA)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대표다. 2007년 대한민국 최초의 우주인 (예비)후보로 선발돼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훈련센터에서 우주인 훈련을 받았다. 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창업 지원 비영리기관인 타이드인스티튜트 대표,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인수위원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우주개발의 역사>
1993.06/09 1단형 과학로켓 1, 2호기(KSR-1) 발사
1998.06 2단형 과학로켓 KSR-II 발사
1999.12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 1호 발사
2002.11 한국 최초 액체추진과학로켓(KSR-III) 발사
2003.09 과학기술위성 1호 발사
2006.07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 2호 발사
2008.04 한국 최초 우주인 배출
2009.06 나로우주센터 준공
2013.01 한국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 3차 발사
2021.10 누리호 1차 비행시험
(자료: 한국항공우주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