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이란 일정한 내용을 적은 문서를 말한다. 또한 문서란 의사소통을 위해 고안된 정보를 물리적으로 묶은 것을 말한다(위키백과). 역사적으로 문서의 재료, 즉 정보를 물리적으로 저장하는 재료는 돌·나무·풀·금속·점토·종이 등으로 변화해 왔다.
종이는 지식 축적과 전달에 그 힘을 발휘했고, 인쇄술이 발전한 근세에 이르러 대중화되었고, 인간 중심의 현세를 중시하는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으며,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은 바야흐로 디지털전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ICT) 발달로 이미 많은 정보가 전자적으로 생성되고 유통·보관되고 있으나 종이 중심 문화는 아직도 사회 체계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에 남아 있는 종이 서면 중심의 법과 관행은 한국이 세계 최고의 전자정부임에도 종이 없는 사회 구현에 아직도 장애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유 중 하나는 서면 문화의 근본적인 혁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서면의 생성과 유통을 전자적으로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종이로 인쇄하고, 서랍이나 창고에 보관하고, 다시 종이로 제출하는 등의 프로세스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백 년 동안 문명의 발달을 끌고 온 사회 체계의 한가운데에 있는 종이 서면에 대한 경외심과 익숙함이 디지털전환 시대에서는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종이의 물리적 매체에 서명과 날인이라는 방법을 이용해 종이의 유일성·불변성·전달성 등 서면성을 부여했고, 이를 통해 종이 서면 기반의 사회 체계가 구축되었음을 알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화가 보편화된 지금까지도 아직 이러한 서면성을 디지털로 구현하지 못했음을 간과하고 있다. 그나마 우리나라에서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발명국답게 전자문서의 무결성·불변성을 보장하는 공인전자문서센터라는 제도를 만들었지만 이것 역시 익숙한 기존 업무처리 관행으로 공공기관의 참여가 원활하지 않아 활성화에 애를 먹고 있다.
결론적으로 종이 서면 특성을 디지털 세상에 완벽히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문서의 유일성과 불변성은 블록체인 기술 등 최신 기술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구현될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기술보다는 사회적 합의가 더 필요하고 이를 위해 제도와 관행의 개선, 공공기관의 솔선수범과 기업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디지털전환 시대의 우리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종이 서면의 유일성 등 특성을 디지털 환경에서 구현하는 것, 즉 온라인상에 디지털 문서의 개체성을 부여하는 페이퍼리스 체계이다. 이는 업무 프로세스에 종이 서면이 개입하지 않아도 되도록 ICT시스템, 인프라, 법과 제도를 갖춤으로써 확보할 수 있다.
새로운 정부도 디지털 정부를 표방하며, 디지털전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국내 전자문서 산업계도 본격적인 디지털전환에 대비해 디지털문서 산업으로 변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는 페이퍼리스가 바야흐로 디지털 전환시대를 이끌어 가는 시대정신이다.
심재희 KT 상무 jaehee.shim@k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