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과 2021년 대학교수들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아시타비'(我是他非)와 '묘서동처'(猫鼠同處)를 꼽았다. 각각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본인의 허울은 못 본 채 남 탓만 하고, 상황에 따라 끼리끼리 모이는 정치권의 행태를 꼬집었다.
사회는 정치인이 귀감을 행하고 언행일치를 보일 때 신뢰와 함께 지지를 표한다. 때로는 잘못이 있을 때 이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에 감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난 두 번의 선거 이후 정계는 국정은 뒤로한 채 스스로 여론을 등지고 섰다. 정치인이라면 다수를 대표해서 체면을 차리고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지만 그들의 '염치 없음'은 점점 도를 더해 간다.
국정은 난맥상에 빠졌다. 여·야·정 모두 경제위기 극복으로 규제개혁을 정조준하면서도 법안 개정을 위한 상임위원회 한 번도 열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아직 1만명대를 오르내리지만 보건복지부 장관은 여태 임명되지도 않았다. 반도체를 키운다면서 업계 최대 현안인 인력 양성을 조정할 교육부 장관도 부재 중이다.
법제사법위원장 자리 하나를 놓고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 국회에서도 핑퐁 게임만 하는 여야 모습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여야는 국회 정상화보다 법사위원장에 더 힘을 쏟고 있다. 법사위원장은 사실상 상원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위치지만 갈등이 반복되니 대중에겐 '과욕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치열한 대결 끝에 법사위원장 자리를 챙긴다 한들 얻는 것보다 잃을 것이 많을 수도 있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협치'가 아쉬운 때다.
지금 파국의 책임은 여야 따로 없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의 지금 모습은 전국선거 연승 정당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당 원로의 눈도장을 위해 행사마다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모습은 이들의 정치가 민생을 향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지도부는 서로를 저격하고, 의원들은 2년 뒤 총선을 위해 줄서기 작업에 열중이니 미래가 뻔하다.
더불어민주당도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을 둘러싼 견제와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연이은 선거 패배에 반성과 혁신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졌잘싸' 망령은 여전히 남아 있고, 위기의식은 점점 무뎌져 가고 있다.
이번 대선과 지방선거가 보여 준 특징은 맹목적인 지지층보다 정치 상황에 맞춰 언제든 지지 대상을 바꾸는 스윙보터가 많아졌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행동 하나하나가 수많은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삽시간에 퍼지는 세상이다. 한 달을 넘긴 국회 태업에 국민은 낙선 노트에 이름을 하나둘 기록할지 모를 일이다. 2년 뒤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공천을 위한 줄서기가 아니라 지금이라도 국민과 민생 안정에 힘쓰며 여론을 등에 업어야 한다.
국민은 더 이상 정치권의 '나 못났다' 경쟁을 보고 싶지 않다. 경쟁해서 승리하는 능력보다 양보해서 배려하는 미덕에 환호하는 시대다. 손아귀에 쥐고 있는 욕심을 버리고 민심을 채워야 한다. 이미 많이 늦었다. 정치가 다시 국민에 대한 염치를 챙기고 협치 자세로 임하길 바란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