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입자 지시 없이도 적립금을 자동 운용할 수 있는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 제도)가 도입된다.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정부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오는 12일부터 시행한다고 5일 발표했다. 지난해 12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뒤 정부는 하위 법령과 세부추진 계획 마련 등 제도 시행을 준비해왔다. 이날 디폴트옵션 주요 내용을 규정하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디폴트옵션은 가입자가 본인의 퇴직연금 적립금을 운용할 금융상품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사전에 정해둔 운용방법으로 적립금이 자동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다.
이번에 정부가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는 이유는 지난해 말 기준 300조원(약 295조 6000억원) 가까이 쌓여 있는 퇴직연금 수익률을 높이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퇴직연금 수익률은 연 2%대로 다른 주요 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미 미국(2006년), 영국(2012년), 호주(2013년), 일본(2018년) 등 선진국에선 디폴트옵션 제도가 일반화 돼 있고 수익률도 높은 편이다. 정부는 “선진국에선 가입자의 적절한 선택을 유도해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것이 정부의 사회적 책무라는 인식 아래 이미 오래 전부터 디폴트옵션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며 “연 평균 6~8%의 안정적 수익률 성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확정기여(DC)형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 이 제도가 도입된다. DC형과 IRP는 가입자 계좌로 돈을 입금해줘 적극적 수익률 개선을 도모하려는 의지가 있는 퇴직연금이다. 다만 전체 퇴직연금 중 절반이 넘는 확정급여(DB)형은 이번 디폴트옵션 대상에서 제외된다.
투자 상품 유형도 제한했다. 사업자는 원리금보장상품, 법령상 허용되는 유형의 펀드상품, 포트폴리오 유형 상품 등에만 투자할 수 있다.
정부는 오는 10월 중 첫 번째 심의위원회를 거쳐 승인된 상품을 공시할 계획이다.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40여개 퇴직연금 사업자간 상품 경쟁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그간 퇴직연금 제도는 낮은 수익률 문제 등으로 근로자 노후준비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었다”며 “근로자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좋은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민영기자 my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