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법정계획이 아닌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으로 에너지 분야 종합계획을 대체하기로 하면서 향후 법 정합성 확보가 과제로 제시된다. '에너지기본계획(이하 에기본)'의 근거법이 사라졌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법정계획이 아닌 로드맵을 제시했지만 추후 법정계획인 에기본에 정책 방향을 반영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이번 계획에서 제시한 에너지 효율 정책, 전기요금 원가주의 원칙도 강조했지만 원론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은 기존 에너지 분야 종합계획인 에기본을 대체하게 된다. 산업부는 이번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달 21일 대국민 공청회, 지난달 23일 에너지위원회 등 약 20차례의 간담회, 토론회 등을 개최해 의견 수렴을 했고 차관회의와 국무회의 등 정부 내 최고의사결정 절차를 거쳤다는 점을 강조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제시하는 첫 에너지정책으로서 근거를 갖췄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에기본 근거법이 사라진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에기본은 에너지 분야를 총망라하는 종합 계획으로 에너지원·부문별로 에너지계획 원칙과 방향, 중장기 에너지 정책 철학과 비전 등을 제시한다.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었는데 지난 3월 '탄소중립기본법' 시행과 함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 폐기되면서 근거법을 상실했다. 국회에서는 에기본 근거법을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서 '에너지법'으로 이관하기 위한 에너지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재 에기본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정부 차원에서 최소한의 의사결정도 안 하고 기다릴 수는 없다”면서 “에기본 같은 법정계획이면 더 좋겠지만 현재는 그런 상황이 아니니 국무회의를 통해서 대체한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새 정부가 로드맵 성격의 기본계획을 제시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비판받았던 지점을 되풀이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에기본 수정 없이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고 이후 수립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탈원전 정책을 반영했다. 이 때문에 법적 근거 없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한 것에 대해 비판이 있었는데 현 정부에서도 비슷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에너지 전문가는 이에 대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법 근거 없이 정책을 추진한 것에 대해서는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다고 봤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법에 근거하지 않은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 따라 하다보니 비판을 받았는데 비슷한 경로로 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는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정책방향에서 제시한 에너지 공급자 효율향상제도(EERS) 의무화 등 에너지 수요효율화 정책은 지난 정부에서도 제시한 정책들로 실제 실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기요금의 원가주의 원칙, 전력시장·거버넌스 독립성 강화 등도 구체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유 교수는 “EERS는 한국전력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가스공사 등 사업자가 투자해야 하는데 다 재무위험기관으로 지정됐다”면서 “외국은 EERS에 들어간 비용을 요금으로 회수하는데, 실행력이나 알맹이가 부족하지 않나라는 지적은 있다”고 밝혔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
-
변상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