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화이자의 팍스로비드가 먹는 코로나19 치료제로 긴급 사용승인됐다. 팍스로비드는 니르마트렐비르라는 단백질 분해 효소 저해제를 유효성분으로 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자신을 복제하며 세력을 넓혀가는데 이를 위한 단백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단백질 분해효소를 이용하게 된다. 니르마트렐비르는 이 분해효소를 억제해 바이러스 복제를 못 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코로나19 증상을 완화 시키게 된다.
이처럼 우리는 질병을 치료하고 병세를 완화하기 위해 약물을 복용한다. 흡수된 약물은 분자 수준에서 질병의 원인이 되는 타깃 단백질의 활성을 저해해 약효를 나타나게 한다. 하지만 현재 시판되는 약물(저분자화합물)의 경우 높은 사용량 때문에 필연적으로 약물 결합 부위에 변이가 생겨 약물 내성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이런 방식은 인체 내 질병을 일으키는 4000여개 단백질 중 15% 정도만을 제어할 수 있으며, 파킨슨병과 같은 신경퇴행성질환은 마땅한 치료제조차 없는 한계가 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차세대 신약 개발의 게임체인저로 주목받고 있는 기술이 바로 표적 단백질 분해(TPD:Targeted protein degradation)기술이다.
TPD 기술 선두 기업 중 하나인 아비나스는 2019년 TPD 기반 전립선암과 유방암 신약 대한 임상시험을 시작했으며, 올해 미국암학회에서 전립선암 항암효과에 대한 임상 2상 중간결과를 발표했다. TPD 전문 기업뿐 아니라 노바티스, 암젠, 아스트라제네카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도 속속 전문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TPD 분야에 뛰어들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다수 스타트업이 기술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은 2015년부터 한국화학연구원과 함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창의융합사업을 통해 TPD 분야를 연구해 왔으며, 올해부터는 새로운 공동협력과제를 시작했다. 태동기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기정학 시대를 주도하기 위해 TPD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첫째 미국이나 유럽보다 저분자 저해제 개발 경험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기술 격차가 크지 않은 TPD 기술에 대한 투자가 그 차이를 좁힐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둘째 국내기업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고질적 파이프라인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국내 산학연은 여러 가지 원인으로 개발이 중단된 저분자 저해제를 보유하고 있다. 정부 투자를 통해 산학연과 연계 가능한 TPD 기술 플랫폼을 구축해 분해제로 업그레이드를 한다면, 신약 개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규 파이프라인 확대도 가능하다.
셋째 과거 비약물성(undruggable)이라고 여겨지던 타깃을 분해할 수 있으므로 보다 근본적인 치료 전략을 확립하고 약물의 양과 투여 빈도를 줄임으로써 환자 삶의 질 향상 도모할 수 있다.
넷째 현재 TPD 기술에서 사용되는 효소는 전체 사용 가능한 단백질 분해효소의 1%도 안 된다는 점에서 그 확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전략적 투자를 통해 각 요소기술을 보유한 산학연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공공투자 효율성 증대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후발주자임에도 선택과 집중으로 급성장해 세계를 주도하는 것처럼, 신약 개발 분야에서도 TPD 기술 분야 투자 확대를 통해 경쟁력 있는 혁신 신약을 개발해 10년 안에 국내기업이 글로벌 매출 10위 안에 포함되는 것을 기대해 본다.
김정훈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질환표적구조연구센터 책임연구원 jhoonkim@kribb.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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