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곡물 가격 상승이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남수단 등 가난한 나라 국민들을 기아 위기로 내몰고 있다고 1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했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지난 3월 이후 식량과 연료 등 비용이 급등으로 인해 ‘심각한 식량 불안정’에 빠진 인구가 4700만 명 더해져, 전 세계 총 3억 4500만 명이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 이 중 약 5000만 명이 기근 선상에 있다.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남수단, 예멘,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현재 9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아사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는 2019년에 비해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일각에서는 올해와 내년 사이 기아로 사망하는 인구가 3000만~5000만명을 굶주림으로 사망케 한 1960년대 중국 대약진 운동을 넘어설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일부 식품 및 곡물 가격은 최근 몇 주간 소폭 하락했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감소가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까지 미치기에는 수 개월이 걸린다고 경고했다. 빈곤국가의 코앞에 다가온 굶주림 위험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물가 폭등과 가뭄이라는 이상 기후까지 가난한 국가를 덮쳤지만 관심과 자원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집중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세계식량기구의 소말리아 책임자 엘-키디르 달롬은 “배고픈 사람의 입에서 식량을 빼앗아 굶어 죽어가는 사람을 먹이고 있는 격”이라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침공으로 세계 식량 안보가 심각하게 악화했다"며 우크라이나에 묶인 약 2천만톤의 곡물이 세계 시장에 공급될 수 있도록 하라고 러시아에 재차 요구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며 전쟁으로 인해 식량 위기가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또 이를 완화하려면 러시아가 흑해 봉쇄를 해제하고 우크라이나 점령지역의 곡물을 시장에 풀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국제적인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농경지를 집중 포격하는 등 계속해서 식량을 무기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우크라이나에서 3대째 농업을 이어가고 있는 파블로 세르히엔코는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불길 때문에) 농경지 가까이로 갈 수조차 없다. 말 그대로 ‘최전방’이다. 농지 일부에는 러시아군이 배치됐다”고 말했다.
집중 폭격으로 농지는 불바다가 됐고, 불을 끄기 위해 무릎이 피로 뒤덮일 정도로 뛰어다녔다고 세르히엔코는 전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매일 밀과 보리밭을 공격한다. 며칠 간 밀밭 30헥타르와 보리밭 55헥타르를 잃었다. 또한 1200헥타르의 땅은 불타고 있어 다가갈 수조차 없다”고 망연자실했다. 여기에 축사와 트랙터 등 장비가 있는 건물, 창고까지 모두 파괴됐다.
데이비드 비즐리 세계식량계획(WFP) 사무총장은 "식량 부족 사태에 즉시 대응하지 않으면 취약 국가들이 생지옥을 겪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최선책은 전쟁을 끝내고 항구를 다시 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