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방송 제작자(크리에이터) 전성시대다. 어린이 장래 희망 1순위로 꼽는다. 이들의 인기요인은 무제한에 가까운 다양한 소재다. 개개인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무로와 매스미디어로 대변됐던 우리나라 콘텐츠 토양은 무선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 영향으로 변했다. '방송' 개념이 바뀌면서 미디어 콘텐츠 시장 대세로 크리에이터와 이들의 집합체이자 성장과 수익창출을 돕는 소속사 다중채널네트워크(MCN)가 떠올랐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에서 수많은 크리에이터가 수많은 소재를 콘텐츠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바바요' 같은 쇼트폼 OTT까지 등장해 기존에 잘 다루지 않았던 정치·시사·성 콘텐츠까지 K-콘텐츠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분명히 존재하는 취향에 맞는 다양한 소재
구글은 지난해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와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유튜브의 한국 생태계를 분석해 50인의 크리에이터를 선정했다. '박막례 할머니(박막례)' '솔바위농원(솔보달)' '핑크퐁(스마트스터디)' '라이브아카데미(신용하)' '땅끄부부(땅끄와 오드리)' 등이다. 이들은 기존에는 방송으로 제작되기 힘들었던 소재를 다루는 데다 취향을 저격하는 코드를 가지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크리에이터와 대척점 관계에 있는 대형 방송제작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크리에이터의 결과물 중 반드시라고 말해도 좋을 만큼 자기 취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일례로 박막례 할머니 채널은 일상을 다루는 평범한 영상이 다수다. 2017년 박막례 할머니가 치매 위험 진단을 받았을 때 손녀의 제안으로 호주 여행을 떠났고 손녀가 영상을 찍어 여행기록을 유튜브에 업로드한 것이 시작이었다. 박막례 할머니 특유의 유쾌함과 유머감각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할머니와 손녀 간의 소통 방식이 전 세계 많은 이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솔바위 농원도 마찬가지다. 농장과 농작물 홍보 지역사회에 대한 애정을 남들과 공유하고자 만들어졌다.
포브스코리아가 매년 발표하는 '대한민국 파워 유튜버 100' 상위권에서도 다양한 소재가 발견된다. 먹방, 자율감각쾌락반응(ASMR), 키즈, 댄스 등 비언어적 콘텐츠가 강세를 보인다. 먹방의 경우 전 세계에서 통용되는 고유명사로 자리잡을 만큼 K-콘텐츠로 자리매김했다.
이외 다양한 쇼트폼 플랫폼과 트위치, 아프리카TV, 네이버TV, 카카오TV를 비롯해 팝콘TV, 팬더TV, 플렉스티비, 세이케스트 등 특정 분야에 집중한 플랫폼에서도 다양한 크리에이터가 각자만의 이야기와 매력을 내세우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단순히 정보제공 역할을 뛰어넘어 삶에 지친 현대인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인기 요인이다. 기존 매스미디어에서는 다룰 수 없던 취향이 반영된 결과다.
최근에는 해외 기업도 한국을 눈독 들일 정도로 매력적인 크리에이터가 넘쳐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인 비전펀드2로부터 9000억원 넘는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한 MCN 젤리스맥은 한국 크리에이터를 양성하겠다고 나섰다.
◇오리지널콘텐츠 제작부터 제품 판매, 유통까지…산업으로 도약하는 MCN
1인 크리에이터 인기가 늘고 콘텐츠가 세분됨에 따라 MCN도 전문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MCN은 크리에이터가 구독자를 늘릴 수 있도록 콘텐츠 기획·제작을 지원하고, 이를 발판으로 광고 유치 등 수익을 낼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국내 MCN은 게임, 드라마, 뷰티, 정보기술(IT) 영역 등 기존 핵심 콘텐츠뿐 아니라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부터 커머스 영역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 크리에이터의 확대로 MCN도 덩달아 덩치를 키웠지만 수익을 확실히 내지 못한다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행보다. 해외 MCN과 비교했을 때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 실행하는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샌드박스네트워크는 자사 크리에이터를 활용해 오리지널콘텐츠를 제작한다. 뮤지컬 배우이자 크리에이터인 햄연지가 출연하는 자가격리형 미스터리 웹뮤지컬 '킬러파티', 대표 크리에이터인 도티가 호스트로 출연하는 토크쇼 '극과 극 토크쇼 끆!터뷰', 생물 크리에이터 정브르와 먹방크리에이터 헌터퐝이 출연하는 여행 예능 '섬브로'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소속 크리에이터 기존 콘텐츠를 편집한 '유병재의 창조의밤' '겜브링TV' '피식대학-한사랑산악회' '승우아빠의 세상 간단한 요리' 등 라이브러리 콘텐츠로 경쟁력을 확보한다.
크리에이터와 전자상거래를 접목하는 시도도 있다. 기존 MCN 비즈니스가 크리에이터와 시청자가 만나는 B2C향 사업이었다면 크리에이터의 인기와 지명도를 바탕으로 제품을 판매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B2B향으로의 확대다. 단순 콘텐츠 제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통까지 이어진다.
아이스크리에이티브는 1인 뷰티 크리에이터 이사배나 윤쨔미 등과 제휴를 통해 상품을 기획한다거나 만화 크리에이터 된다와 손잡고 상표를 만들어 상품을 판매하는 등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다양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기 위한 진화
오디오 플랫폼 '플로'는 오디오 크리에이터 플랫폼으로 전환을 예고했다. 크리에이터가 창작활동으로 팬덤을 만들고, 크리에이터와 팬덤 커뮤니티 활성화에 따른 '수익 창출' 크리에이터 이코노미 L2E(Like to Earn) 생태계를 구축한다. 이용자가 크리에이터 콘텐츠를 소비하는 만큼 토큰을 지급하고, 이를 암호화폐로 바꿔 쓸 수 있게 하는 구조다. 암호화폐는 메타버스, 온라인 쇼핑몰 등 각종 파트너 서비스에서 이용할 수 있도록 플로의 'L2E 동맹'을 키울 계획이다. 음악 구독료 외에도 다른 수익모델을 개발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케이블 채널 위주 사업을 진행하던 iHQ는 쇼트폼 OTT '바바요'를 론칭했다.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중심인 OTT들과 다르게 시사와 예능 프로그램을 메인으로 가져간다. '개시바쑈' '신쾌도난마'와 같은 정치프로그램과 '성장인'과 같은 성 중심 콘텐츠가 인기를 끌면서 K-콘텐츠의 다양성을 더하고 있다.
이현수기자 hsoo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