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의 미래는 인공지능(AI)과 메타버스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제 학술지 '광고 저널(Journal of Advertising)'이 2019년 9월에 'AI와 광고'라는 특별호를 발행한 이후, 학자들도 AI 광고에 주목했다. 학계에서는 소비자를 설득하려는 목적에서 인간과 기계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를 학습하는 다양한 AI 기능을 활용하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AI 광고'라고 정의했다. 업계에서도 광고 콘텐츠를 만드는 데 AI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AI 크리에이터 등장
2016년 칸광고제에서는 아이엔지의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캠페인이 두 개의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캠페인은 AI 기술을 활용해 17세기 바로크 시대 화가인 렘브란트 작품을 재현한 프로젝트였다. 컴퓨터가 렘브란트 작품에서 각도, 붓질 방법, 물감 색상, 배합 비율, 농담(濃淡)을 분석한 다음, AI 안면인식 기술과 심층 학습 알고리즘을 적용해 렘브란트 작품 346점을 스캐닝해서 원작과 똑같이 3D프린터로 재현함으로써 미술관에 가지 않고서도 누구나 원작 느낌을 그대로 감상할 수 있게 됐다.
2016년 4월, 일본 광고계에서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일본의 껌 브랜드인 클로렛츠 민트탭을 놓고 인간 크리에이터 디렉터와 AI CD가 아이디어 대결을 펼쳤다. 광고회사 맥켄의 도쿄지사에서 개발한 AI CD 베타(AI-CD β)가 있었기에 아이디어 대결이 가능했다. 9월에 투표 결과를 종합한 결과, 구마모토 미쓰루 인간 CD가 승리했지만 54% 대 46%라는 근소한 차이였다. 우리나라 방송에서도 광고 두 편 투표를 진행했다. KBS1-TV의 '명견만리' 프로그램에 나왔던 미래참여단은 베타의 아이디어인 '도시'편에 25표나 더 많은 표를 찍었다. 놀라운 결과였다. AI 알고리즘을 활용한 아이디어 발상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사건으로 인간의 달 착륙에 비견할 만했다.
일본의 광고회사 덴쓰에서는 2017년 5월에 AI 카피라이터 아이코(AICO)를 선보였다. 아이코는 'AI Copywriter' 약자로 일본어로 '귀여운 여자아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한 신문사가 광고를 의뢰하자, 아이코는 블로그와 뉴스 사이트에서 신문 광고에 관련된 방대한 자료를 학습한 후 멋진 광고 카피를 써냈다. 2018년 12월에는 디지털 분야에 특화된 카피라이터 '다이렉트 아이코'를, 2019년 5월에는 덴쓰의 자회사인 덴쓰디지털에서 '어드밴스트 크리에이티브 메이커'를 개발했다. AI가 광고 샘플을 대량으로 만들고 광고 효과가 높을 만한 아이디어를 판정해 최종적으로 노출하는 배너광고 제작 시스템이었다.
우리나라의 싸이더스 스튜디오 엑스에서 개발한 '로지'나 롯데 홈쇼핑에서 제작한 '루시'는 첨단 그래픽 기술과 AI 기술로 탄생시킨 가상 인간이다. 앞으로 가상 인간은 유명 스타의 전유물이었던 광고 모델 분야를 서서히 대체해 나갈 것이다. 광고제작 지원 공공 인프라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KOBACO)의 아이작(AiSAC)도 주목할 만하다. 아이작은 코덱스(KODEX) 시스템에 축적돼 있는 수만건 광고 영상에 AI 기술을 접목시켜 2021년에 광고영상 아카이브 서비스를 시작했고 2022년부터는 광고 스토리보드를 자동으로 제작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광고에 AI 기술 적용 목적
이제 AI 알파고(AlphaGO)의 증손자뻘인 '뮤 제로(Mu Zero)'가 제작자 지침이 없더라도 스스로 학습해서 상황을 자율적으로 분석한다. 어떤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범용 AI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AI는 아이디어가 생명이라는 광고 크리에이티브 분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AI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광고 콘셉트를 더 신속히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며 광고 창작자는 빠지기 쉬운 주관성의 유혹을 객관적 자료로 보완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광고와 마케팅 분야에서는 AI 기술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목적을 위해서 더 자주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첫째, 실행 최적화의 목적이다. 기계학습 알고리즘은 어떤 플랫폼에서 광고와 마케팅 활동이 제대로 수행되는지 신속히 분석해 개선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둘째, 개인 맞춤형 목적이다. AI는 소비자 행동에 관한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개인 맞춤형의 분석 결과를 제시해, 광고 기획자는 보다 현실적인 광고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셋째, 광고 창작 자동화 목적이다. AI는 광고 카피를 짧은 시간에 대량으로 쓰고 기계학습을 하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은 카피를 쓸 가능성이 높다. 넷째, 수용자 타깃팅의 목적이다. 광고 기획자는 AI가 분석해준 소비자 반응 자료를 바탕으로 개별 소비자에게 최적화된 통찰력을 발견할 수 있다. 다섯째, 미디어 믹스 모델링의 목적이다. AI는 주어진 예산을 바탕으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미디어 믹스 전략을 자동으로 제시할 수 있다.
메타버스와 광고 접점
AI와 더불어 메타버스(Metaverse) 시대도 시작됐다. 메타버스는 온라인의 3차원 가상공간에서 아바타 모습을 구현한 개인이 현실 세계처럼 사회·경제·문화적 활동을 하는 플랫폼이다. 메타버스를 우리말로 '확장 가상세계'로 부르기를 권고한 국립국어원의 기대처럼 메타버스는 확장 가상세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기업에서 새로운 광고 플랫폼으로 메타버스에 주목하기 시작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메타버스는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지만 광고 영역에서도 현실과 비현실이 공존하는 생활형 가상세계를 제시하며 광고에 날개를 달아주고 있다.
기업과 광고업계에서는 새로운 광고 플랫폼으로 메타버스에 주목하는데 이용자 대부분이 MZ세대다. 미국의 게임 플랫폼이자 메타버스 게임으로 급부상한 '로블록스(Roblox)'는 이용자 83%가 24세 이하이고 55%가 16세 미만이다. 기업들은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해 메타버스 비즈니스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MZ세대가 주요 소비층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일찍이 메타버스를 활용해 광고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2020년 9월, 방탄소년단(BTS)은 신곡 '다이너마이트' 안무 영상을 슈팅게임 '포트나이트(Fortnite)'에 최초로 공개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패션 기업 구찌는 제페토와 '구찌 하우스'(2021)라는 협업을 진행했다. 이용자들은 캐릭터에 구찌 아이템을 입혀보면서 자연스럽게 상품과 친해지게 된다. 이용자들은 구찌, 나이키, 디즈니, 컨버스, 푸시버튼 같은 패션 브랜드가 입점한 제페토에서 내부 유료 화폐인 '잼(Zem)'으로 상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버버리는 'B 바운스'라는 게임을 만들어 버버리 상품을 활용해 게임을 하게 했다.
콘텐츠를 매개로 플랫폼에서의 만남
이밖에 여러 민간 기업에서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광고 활동에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민간에 뒤질세라 공공 분야에서도 광고 홍보 활동에서 메타버스를 활용하고 있다. 메타버스를 활용한 광고 활동에서 게임이나 엔터테인먼트는 인기를 끌고 있지만 전통적인 디스플레이 광고는 그 위세가 앞으로 한풀 꺾일 것이다. 그렇지만 광고가 메타버스 플랫폼에 올라타 가상세계에서 가능한 광고의 모든 기회를 종합한다면 엄청난 폭발력을 지니게 된다. 디지털 기술이 발달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무너질수록 메타버스 영역은 확장될 것이다.
이용자가 확장 가상세계인 메타버스에서 게임을 하고 친구도 만나며 생산 활동을 하면서 수익까지 올린다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그보다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없다. 광고 기능도 '미디어를 통한 메시지 전달'이라는 전통 관점에서 '콘텐츠를 매개로 플랫폼에서의 만남'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변한 상황에서, 광고주도 사람이 몰리는 메타버스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메타버스가 디지털 미디어와 상거래 미래를 열어가듯이 앞으로의 광고 환경도 MZ세대에게 친숙한 메타버스 기반으로 탈바꿈할 것이다. 메타버스는 기업의 전략 커뮤니케이션 활동 판을 뒤집는 진화된 종(種, species)에 비유할 수 있다. 광고계는 지금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
광고 '뉴 칼라'를 기다리며
미래의 광고산업은 우리가 지금껏 경험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으로 변할 것이다. 공급자와 수요자를 직접 연결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면 광고산업의 기반 자체가 완전히 재편될 수 있다. 그 근간은 AI와 메타버스를 활용하게 하는 광고 기술이다. 인간이 AI에 지배당할 것인지 아니면 함께 공존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은 불필요해졌다. 이런 현실에서 AI와 메타버스를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뉴 칼라(New Collar)' 계층만이 앞으로의 광고계를 주도해나갈 것이다. AI와 메타버스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소비자 심리 타점(sweet spot)을 발견하고 통찰력을 얻는 문제가 우리 앞에 주어진 시급한 당면 과제다.
김병희 서원대 광고홍보학과 교수·국제미래학회 미래광고위원장
<필자 소개>
김병희 교수는 한국광고학회 회장, 한국PR학회 회장, 정부광고자문위원회 초대 위원장, 서울브랜드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국제미래학회 미래광고위원장을 맡고 있고 그동안 '디지털 시대의 광고 마케팅 기상도'를 비롯한 광고 관련 60여권 저서를 출간하고 110여편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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