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https://img.etnews.com/photonews/2207/1553917_20220725133111_297_0001.jpg)
유대인 빈야민 빌코미르스키는 1995년에 '편린들: 어린 시절의 기억, 1939~1948'이라는 홀로코스트 생존 수기를 출간했다. 독일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이야기다. 나이 어린 소년이 겪은 수용소 생활의 묘사는 감동을 주었고, 감사와 찬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가짜임이 드러났다. 브루노 그로장이라는 사람이 고아원 경험과 홀로코스트 생존자 인터뷰를 짜깁기한 것이었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 기준은 뭘까.
TV 드라마가 역사와 현실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면 거짓이고 가짜일까. 논의를 확대해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진짜일까. 이 세상과 우리의 기억이 10분 전에 만들어졌고,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가짜라면 우리도 가짜이고, 우리가 만든 것도 모두 가짜다. 동굴에 갇힌 죄수처럼 햇살 가득한 진짜 세상을 알지 못하고 동굴 속 그림자만 진짜라고 믿고 살아 온 것은 아닐까.
플라톤은 진짜인 이데아(본질)를 꾸며 놓은 가짜가 현실세계라고 했다. 현실세계에 충실하기보다 이데아가 뭔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세계도 중시했다. 현실세계에 충실하면 이데아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중세로 넘어와선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데아를 신으로 대체했다. 진짜 세상인 천국을 믿고 거짓된 현실세계의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유일하게 할 일이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다. 신이 부정된 현실세계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현실세계가 진짜가 되고, 인간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합리적 이성을 통해 다양한 가치를 실현할 적극적인 삶의 공간이 되었다.
그렇지만 현실세계에의 집중은 물질만능주의를 가져왔다. 자본주의는 시장을 만들고 풍요를 가져왔다. 고객이 원하는 상품을 원하는 시점과 장소에 원하는 방법으로 제공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더 이상 팔 수 있는 것이 없어지고 있다. 새로운 팔 것을 추구하는 욕구는 가상공간 메타버스를 만들어 가상재화(virtual goods)를 팔려고 한다. 처음엔 현실세계에 있는 것을 베껴서 메타버스에 만들었다. 아바타를 만들고 아바타가 입을 한정판 명품 옷과 신발, 자동차를 만들어 판다. 이젠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상품을 만들어 팔려고 한다. 추억의 트윗 메시지나 디지털 자산을 NFT로 만들어 판다. 현실세계의 작품을 디지털자산과 NFT로 만들고 원래 작품은 없앰으로써 자산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메타버스는 진짜인가 가짜인가. 게임 속 세상은 어떤가. 실제 공간에선 쓸모가 없는 게임아이템을 팔기도 한다. 키보드를 두드려서 오프라인과 또 다른 삶을 찾고 있다. 가짜 세상에 만든 가짜라고 매도할 수 있을까.
독일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기술복제가 무한으로 일어나는 세상에서 가짜가 늘면 원본, 진품, 진짜가 가지는 감동의 아우라와 가치가 사라진다고 했다. 그럴까. 가짜는 아우라가 없는가. 가짜에서 아우라를 만드는 사람이 나타나고 있다. 가짜에 가치가 더해지고 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시뮐라크르와 시뮐라시옹'에서 현실의 사물을 베낀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하고 진짜보다 더 진짜같이 소비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생활에 필요가 없지만 돈을 지불하고 싶은 세상이다. 인간의 두뇌는 다른 포유류가 갖지 못한 대뇌피질(신피질)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데이터를 수집·학습해서 시뮬레이션하고, 창작 등 의사결정을 한다. 단순히 베끼는 것은 저작권 등 지식재산권 침해다. 거짓으로 소비자를 속이면 사기다. 그러나 산업가치를 더하고 시장 신뢰를 얻은 가짜는 다르다. 진심을 담은 가짜를 만드는 것이 4차 산업혁명이고 미래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나는 인공지능을 변호한다' 저자) sangjik.lee@bk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