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이냐 협력이냐
인류 번영의 가장 큰 동력 두 가지는 경쟁과 협력이다. 경쟁은 실력을 겨뤄 보다 큰 성과를 낸 사람이나 집단이 더 많은 보상을 가져가는 방식이다. 잘하나 못하나 비슷하게 보상을 받게 되면 경쟁의 동력이 떨어지게 된다. 경쟁을 기반으로 한 시장원리를 택한 서방국가들이 번영한 대신 국가가 기업을 운영한 동구권 국가들은 몰락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나타난 사조가 자본주의 3.0으로 불리는 신자유주의다. 시장원리와 경쟁촉진이 혁신 성장 번영으로 간다는 확신에 따른 것이다. 1980년도 전후로 불어닥친 신자유주의는 초기에는 큰 성과를 가져왔으나 무한경쟁 승자독식으로까지 치닫자 많은 문제점을 가져왔다.
지나친 경쟁에 따른 스트레스와 피로감, 개인주의와 불신감, 팀워크 저하, 양극화 심화 등 문제가 나타난 것이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고 해결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자본주의 4.0이다. 지속가능경영, 동반성장, CSR, ESG,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등은 모두 상생과 인본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개인의 경쟁보다 팀워크와 협업을 통한 성과창출을 중시한다. 인간은 예로부터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큰 일은 협력과 팀워크로 해결해 왔다. 신자유주의가 끝날 무렵 많은 기업이 내건 슬로건이 있다. '팀워크가 천재를 이긴다.' 이 슬로건은 '소수의 탁월한 인재가 조직 전체를 먹여 살린다'는 신자유주의적 발상을 뒤집는 개념이다. 비인간적 무한경쟁보다는 협력 협동이 더 좋은 성과를 가져오며 지속가능하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물론 인류발전에 경쟁이 중요한가 협력이 중요한가를 놓고 하나를 고를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동력은 앞으로도 균형점을 찾으며 인류발전 기본으로 작동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와 협업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클라우스 슈밥이 주창해 널리 퍼졌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속화된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인공지능(AI)의 활용이다. AI가 모든 산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까지 활용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제3의 물결 정보혁명이 컴퓨터로 견인됐듯이 4차 산업혁명은 AI가 이끌고 있다. AI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파고들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정보혁명 시대에서 컴퓨터는 인간의 단순 계산과 단순노동을 대체했다면 이제 AI는 인간의 사고영역까지 대체하고 있다. 정보혁명시대 컴퓨터나 로봇이 인간의 노동력을 절감하고 무인화를 통해 성과에 기여했다면 이제는 AI와 AI 로봇이 인간과 함께 일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인간과 AI 협업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협업은 다름의 결합이다
서로 돕는 모든 행위는 협력이다. 협동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비슷한 기능(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돕는 것이다. 협업은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사람들이 돕는 것이다. 농업인이 조합을 만들어 공동구매, 공동생산, 공동출하해 소득을 늘리는 것은 협동이다. 대형병원에 환자가 왔을 때 서로 다른 전공의가 모여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을 협진이라 부르는데 이게 바로 협업이다. 정보화사회 이후 인간은 정보공유가 수월해지고 연결성이 좋아지면서 협업경제(Collabonomics)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유무인으로 진화하는 협업의 미래
오늘날 협업이 가능해지고 점점 확산되는 이유가 있다. 협업은 서로 다른 기능이 연결돼 시너지를 창출하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부터 나타난 분업은 업무 특성에 따라 칸막이를 만들어 놓고 일을 하는 것이다. 옆 부서가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않고 부서별로 고유 업무를 하고 나중에 이를 통합하는 방식이다. 이래야 시간이 단축되고 사고도 줄어들게 된다. 삼각형 수직조직과 업무특성별 업무를 나눠서 하는 분업은 생산성을 크게 높여 '과학적 관리' '관리혁명'이라는 좋은 평까지 들었다. 그러나 정보혁명 이후 컴퓨터와 졍보통신기술이 보급되면서 세상은 '연결경제'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실시간 정보공유가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인류가 협동에서 협업으로 일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게 됐다. 인간과 인간의 협업 그리고 조직과 조직의 협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게 '제1차 협업'이었다면 이제는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제2차 협업'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시대
최근 용산 대통령실 주변은 경호실 요원과 로봇개가 함께 근무하고 있다. 로봇개는 감지와 식별능력이 인간이나 개보다 뛰어나다. 피로감을 느끼지도 않고 착각하지도 않는다. 그동안 미국 공군부대에서 고가의 군용기들을 지키기 위해 군견을 활용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군인과 로봇군견이 함께 근무하거나 로봇군견이 단독으로 감시업무를 맡고 있다. 또 미 공군이 추진 중인 유무인 전투비행대는 인간조종사가 탑승한 전투기가 AI조종사가 탑승한 무인전투기와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체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AI조종사는 편대장의 지휘를 받아 임무를 수행할 수 있고 독자 임무수행도 가능하다. 지상에서는 군인과 AI로봇 군인이 함께 작전을 수행할 것이다. 스마트국방의 핵심은 AI를 기반으로 한 유무인 협업 시스템이다. “앞으로 AI로봇이 최고경영자(CEO)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이 말은 세계적 컨설팅회사인 PwC 대표인 스콧 라이켄스가 수년 전에 한 말이다. 이 말을 할 때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AI의 획기적인 발전을 보면서 이제는 이 말을 많은 사람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미 병원에서는 서로 다른 전공의와 AI의사가 협업해 진찰하고 치료하고 있다. 이 스마트 의료체계는 점점 고도화돼 의료혁신을 가져오고 인간 수명연장에 획기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많은 조직의 이사회에는 인간이사와 AI이사들이 함께 협의하고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정부에서도 국무회의에는 각 부처 장관들과 각 부처 AI장관들이 함께 참석할 것이다. 향후 인간의 모든 생활 영역에는 AI로봇이 참여하게 될 것이다. 집집마다 AI로봇 집사가 가사를 돕고 AI개나 AI고양이가 반려동물 노릇을 할 것이다. 의회에는 AI로봇 의원들이 함께 토론하고 표결에도 참여할 것이다. 인간과 AI가 협업하고 공존하는 세상이 앞으로 다가올 제5차 산업혁명의 모습이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인가
인간은 모든 생명체보다 지능이 높다. 그래서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이 말을 쓰기가 어렵게 됐다.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AI로봇이 나타나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활동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협업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AI로봇, AI로봇과 AI로봇의 협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될 것이다. 인간이 만든 AI로봇이 인간보다 지능적이고 힘도 강해지는데 따른 위험성도 나타나고 있다. 모든 AI로봇에는 인간을 공격할 수 없도록 안전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장착하는 문제, 로봇이 범죄행위를 할 수 없도록 통제하는 문제 등 인류가 함께 풀어가야 할 새로운 과제도 함께 나타나고 있다.
메타버스는 또 하나의 우주다
메타버스의 개념과 기술이 나타난 지는 오래됐지만 인류가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이 기술을 산업과 일상에 끌어들이게 됐다. 이제 메타버스는 인류에게 또 하나의 우주를 제공하고 있다. 꿈과 현실을 융합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다양하고 담대한 생각을 큰 비용이나 위험 없이 가상현실에 구현시킬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자가 오래 전 말했던 '나비의 꿈'이 실현되는 철학적 의미도 담고 있다. 꿈에서 나비가 돼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실상을 즐기다가 꿈을 깨고 나니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왔고 장자는 '나'라는 존재는 인간인가 나비인가를 철학적 과제로 던진 것이다. 생각하고 활동하는 게 나라면 나는 인간이기도 하고 나비이기도 한 것이다. 장자는 꿈을 꾸었지만 현대인은 메타버스를 통해 그 꿈을 미리 디자인하고 체험할 수 있게 됐다. 메타버스라는 가상 세계로 출근하고 업무도 할 수 있다. 오락도 하고 여행도 할 수 있다.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할 수 있다. 결혼했으니 아이도 낳을 수 있고 가정도 꾸릴 수 있다. 메타버스 영역은 무한하다. 매일 우주여행도 할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아바타로 변신할 수도 있다. 인간의 영역이 무한대로 뻗어 나가는 신세계인 동시에 인간의 정체성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다. 앞으로 메타버스의 고도화와 일상화에 따른 장단점을 고려해 현실과 가상현실의 균형점을 찾는 일이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인간과 로봇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하여
AI와 메타버스가 일상화되면 인간영역은 확장되는 것일까, 축소되는 것일까. 인간과 로봇의 동거는 편리한 것일까, 불편한 것일까. 로봇과의 협업으로 인간의 안전과 편익이 높아질 수 있지만 로봇의 감시를 받고 잔소리까지 듣게 될 수도 있다. 인간과 로봇은 어떤 관계로 설정돼야 하는지가 인류의 새로운 사회적 과제다.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AI로봇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을까. 로봇은 끊임없이 복종하기만 할까. 협업이 상생이고 지속가능한 철학을 담고 있다면 인간과 로봇의 관계는 협업파트너로 설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많은 의문점에도 이제 인류는 인간과 AI로봇의 공존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국제미래학회 자문위원
<필자 소개>
윤은기 회장은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총장,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을 역임했고 '時테크' '협업으로 창조하라' 등 20여권의 저서가 있다. 국제미래학회 자문위원이며 한발 앞선 통찰력으로 시대의 흐름을 예리하게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명강사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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